본지는 우리고장의 정체성인 선비정신을 현대에서도 계승 발전시키고자 선비정신 실천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지난해 개발한 현대적 선비정신실천매뉴얼의 내용을 토대로 매주 선비정신 실천과 관련한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경(敬)과 더불어 유가(儒家)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誠)은 유학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밝혀주는 철학적 중요 개념으로 진실, 성실, 정성 등의 의미를 지니면서 우주(天)의 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즉,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면서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가 성(誠)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誠)을 핵심사상으로 삼고 있는 ‘중용’에서는 “성은 하늘의 도리이며 성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誠者 天之道, 誠之者 人之道)”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가철학에서 성(誠)과 경(敬)은 내외,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誠)은 내면의 도덕적 근원이며, 경(敬)은 성에 도달하기 위한 외부적 성찰과 반성 등의 방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誠)을 우리는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중용’에서는 성(誠)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선을 선택해서 놓지 않는 것(擇善固執)”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삼강령 팔조목의 성의(誠意)장에서는 뜻을 진실하게 하는 방법으로 무자기(毋自欺)와 신독(愼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자기(毋無自欺)는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고, 신독(愼獨)은 홀로 있을 때도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선(善)울 선택해서, 홀로 있을 때도 삼가며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성(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주자는 성(誠)을 하늘의 도, 경(敬)을 인간행위의 근본으로 보고, “성 이후에 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이 참된 이후에야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경(敬) 이후에 성(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이 비록 참되지 않지만 항상 두려워하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성에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경(敬)이 투철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 성(誠)이므로, 결국 경 공부의 최종 목표는 성에 이르는 것이며 여기에 이르는 것이 수양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향선생이 말씀하신 ‘立事必誠’, 즉 “일을 함에는 반드시 誠으로 할 따름이다”라고 한 것에서 ‘立事’는 어떤 일을 행하다는 뜻으로 이때의 일은 공적인 업무로도 볼 수 있고 개인적인 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적인 업무든 사적인 일이든 그 일에 임해서는 항상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성실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도 주자의 성 사상을 계승했으나 관점은 약간 달리했습니다.

경(敬)은 학문의 궁극처에서 획득되는 것으로 본 퇴계는 성(誠)보다는 경을 더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율곡은 “성이란 하늘의 實理요 마음의 본체”라고 하여 성을 天과 사람의 근원과 본체로서 파악했습니다. 안향선생이 제기한 성(誠)은 실천윤리로서 ‘대학’의 팔조목 「성의」 에서 말한 ‘毋自欺’와 ‘愼獨’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 후기에 다산 정약용이 이기론 중심의 성리학이 유학의 실천성에서 멀어졌다고 보고 원시유교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면서 ‘行事’, 즉 실천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다산에게 있어서 성은 신독이며, 그것은 天에 대한 畏敬의 마음을 토대로 선악의 흔들림 속에서 선으로 가게 하는 성찰을 포함합니다.이러한 측면에서 성(誠)의 실천을 위해서는 첫째, 매사에 진실되게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일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이 보지 않을 때도 언행을 삼가면서 내가 추구하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성(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성(誠)을 실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의미있고 보람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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