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면 레날린 씨

한국에서, 영주에서 살기를 선택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 결혼 전과 후, 최소 두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피부로 느낀 영주는 어떠한 곳일까. 정착단계부터 영주의 변화를 바라봐 온 그들에게 물었다. [편집자주]

▲레날린씨. (한국이름 : 이혜은)

포옹력과 배려로 문화차이 줄여
육아, 교육 공동육아로 정보공유

필리핀에서 온 레날린(48)씨. 한국이름 이혜은. 1999년 12월 24일 한국으로 온 그녀는 서울에서 일주일을 머물다 영주시 문수면 만방1리에 정착했다.

▲가족 안에서 동등하게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지금은 익숙한 음식이지만 처음 낯선 한국에서 그녀는 발효된 음식냄새를 적응하기 힘들었다.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그녀를 위해 남편은 서울의 친구에게 부탁해 필리핀 음식을 공수해 왔다.

“시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편에게는 당시 95세 시할머니가 유일했어요. 제가 시집와서는 작은 어머니가 3개월 동안 함께 살면서 제사지내는 방법, 한국음식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다행이었죠”

함께 살던 시할머니는 어느 날 모든 가족들이 모여 밤새 놀고 즐기는 가운데 새벽녘에 주무시듯 돌아가셨단다. 그때가 99세셨다고.

“필리핀의 문화는 남녀가 동등한 관계에요. 빨래도 설거지 등의 집안일도 밖에 일도 함께 하죠. 한국에서 적응하는데 문화는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남편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어요. 지금도 한결 같죠”

▲교육도, 힘듦도 함께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녀의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사이클 선수로 활약해 전국대회에 나가 메달을 획득했고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주변의 기대감이 높다. 남편에게 한없는 애교만점 공주라는 그녀의 딸은 반장, 전교부회장을 맡더니 초등학교 6학년이 된 후 전교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해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딸이라고 했다.

지금이 좋아 지난 일을 웃으며 말할 수 있다는 그녀에게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다.

“결혼하고 두 번이나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어요. 한번은 밭에서 일하는데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너무 속상했어요”

그녀가 다시 임신하자 남편은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했단다. 너무나도 소중한 아들과 딸을 위해 이들 부부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한국말이 지금도 어려워 힘들 때도 있다는 그녀, 아이들을 위해 한글은 남편이 전담하고 영어는 그녀가 맡아 가르쳤다. 서로 도우며 함께 키우는 교육을 했단다.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주말에 좋은 곳으로 놀러가고 싶다고 하면 남편이 인근 지역 다문화가정의 남편들에게 연락해요. 그러면 집집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매교회 인근 강가에 모여 한바탕 먹고 놀아요. 남편이 대장노릇을 해왔죠”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함께 어울렸다는 그녀는 남편의 모임을 통해 아이들의 교육, 육아노하우를 공유하며 함께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도 되고 즐거웠다. 크고 좋은 놀이동산이 아니라도 자연과 더불어 먹고 즐겼던 때라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영주에서 살아가는 삶

몇 년 전까지 그녀는 필린핀 자조모임에 함께 해 왔다. 타국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도우며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다문화지원센터를 통해 다문화이해교육에 참여하고 음식 만들기에 동참하고 새마을회관에서 김장봉사도 도왔다. 모국인 필리핀에 태풍이 와서 피해를 입었을 때는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전달하고 필리핀에서 2주 동안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렇게 봉사가 좋아 참여한 그녀에게 영주시장상, 새마을회장상, 영주시종합사회복지관 표창이 주어졌다.

배우고 봉사하고 육아하고 바쁜 생활이지만 집 농사도 꼼꼼히 살피는 그녀. 자두, 땅콩, 깨, 고추 등을 수확하고 판매할 때가 가장 기쁘단다. 하지만 아직도 수박농사는 정말 힘들다고.

그녀는 2014년부터 장수농공단지 내 업체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됐다. 교대근무에도 성실하게 임한 덕분인지 올해 4월 우수사원으로 표창장을 받았다.

“상을 받는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어요. 외국인 사원이 받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어요. 평소 주관이 ‘열심히 하자’인데 이렇게 기쁜 일로 다가왔어요. 앞으로 제 소신대로 해 나가려고요”

그녀는 체육을 시작한 아들을 보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다문화가정에게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기를 바란다”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도전해보고 든든한 내편인 남편에게 정보를 묻고 가족의 관심과 이해로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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