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 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오십여 년도 넘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친지가 고국에 잠시 들렀다.
미국이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교하는 여러 가지를 말해 주었는데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기억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두 나라 학생들의 태도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과제를 못했을 때 그 이유를 선생님에게 절절히 말한다는 것이다.
주로 아팠다거나 가정 사정을 핑계로 들어서 벌이나 불이익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했다. 이런 경우 미국 학생들도 사실을 설명하지만 정해진 벌이나 불이익을 감수한다고 했다.
그는 두 나라의 선생님도 비교했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변명이 타당하면 벌을 면제 해주고 미국의 선생님들은 과제를 안 해 온 이유는 알았노라 하면서 벌은 준다는 것이다
 사정은 사정이고, 결과는 결과이며, 약속은 약속인 것이 미국의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머리를 짜 내서 동정 받을 사유로 상대를 움직여 불이익을 모면하는 영리한 처세를 배우는 우리의 경우와 위기를 모면하기보다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정해진 불이익을 당연하게 감수하는 학생들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문제는 장년이 되어서 어느 쪽의 학생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당하고 책임 있는 국민이 될 것이며 리더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인가 하는데 있을 것이다.
선생님의 봐주기가 학생들의 변명과 핑계를 조장한다는 뉘앙스의 이 말은 ‘국사에도 사정이 있다.’는 우리의 사회적 정서이고 그 시대를 살아온 학생들은 지금 원로 국민이 되어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내각구성을 위한 후보들의 인사청문회가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첩첩산중이며 새 정부로서의 현안이 엄중한데 인사청문회 절차는 냉엄하고 까다롭기만 하다. 고위공직자일수록 도덕성과 법 수호정신이 높아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께서 제시한 관문이 너무 좁은 탓인지 너끈하게 통과되는 후보가 없고 통과되어도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간신히 통과되고 있다. 야인으로 살거나 현직에 머무르면 보여주지 않아도 될 흠결이 고위공직에 오르는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과거에 알게 모르게 지은 여러 가지 범법의 경력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쪽은 기준 미달이라며 통과를 막고 다른 쪽은 발목잡기라며 불평하는 모습을 여야가 바뀐 세상에서도 우리는 보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이력은 대부분 자식들로부터 파생되었음을 본다.
후보가 너무 많아 무슨 흠결이 어느 후보의 흠결인지 모르겠지만 회자되는 흠결의 종류는 위장전입 과 부정입학, 취업이 주를 이루고 본인의 논문 표절, 음주 운전, 부동산 거래 등이 거론된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으며, 인생살이가 길을 걷는 것과 같은데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걷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더구나 몇 십 년 전의 일을 들추어내니 당시에 정치인이 될 계획이 없었던 탓인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 온 사람이 이토록 귀한 현실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능력 있고, 도덕적으로 깔끔하고 범법사실이 전혀 없는 사람 ‘누구 없어요!’ 하고 찾고 싶은 심정일 게다.
새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인물상이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후보의 흠결을 찾는데 혈안이 되지 말고 후보에게 지명된 부처의 일을 수행할 해박한 전문지식이 있는지, 문제를 올바르게 보는 혜안이 있는지, 그것을 추진하는 능력과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인사청문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국제정세가 급박하고 엄중하니 어떻게든 빨리 내각은 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말은 과제를 못한 학생들의 변명이나 핑계처럼 해명이 구차스러운 후보들이 있다는 것이다.
혹시 옛날의 학생들처럼 변명이나 핑계가 관용으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덮어지지 않을 흠결을 구차한 변명으로 덮으려고 애쓰는 것은 범법한 옛날 보다 더 옳지 못하다.
이런 분들이 고위공직자가 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긍정하고 사과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관문을 뚫는 고위공직자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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