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출신 독립운동가 일대기

배우 권성덕씨 등 실력파 열연
광복절 기념 3차례 공연

광복 72주년을 맞아 우리고장 영주 출신 두 독립투사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제작돼 무대에 오른다.

2015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 뮤지컬은 2년 만에 더 탄탄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실력파 배우들이 열연할 예정이어서 큰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이 뮤지컬의 소재는 우리고장 장수면 출신의 송영호, 재호 형제다. 이들 형제는 심산 김창숙 선생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대패한 일본군의 대대적 추격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독립군들과 만주 땅을 떠돌던 겨레들을 다시 모아 내몽고의 땅을 임차해 새로운 항일투쟁의 본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그 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내로 잠입한 송영호 지사는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나석주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등 암약을 하다가 동생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가족들도 수난을 겪게 된다.

지역 출신 최대봉 작가가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번 공연에는 이승만 역할 등으로 널리 알려진 원로 배우 권성덕 씨를 비롯 뮤지컬 정도전의 이성계 역을 맡은 나진훈, 지역 연극계 원로 김창남 씨 등과 박지훈, 박혜민 씨 등 많은 역량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특히 ‘슈퍼디바 2012’에서 우승하는 등 많은 방송활동으로 유명세를 탄 장은주 씨가 송재호 지사의 처 유임이 역을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북도와 영주시가 주최하고 문화랑이 주관하는 이 공연은 광복절인 오는 15일 오후 3시와 7시, 다음날인 16일 저녁 7시 등 총 3회에 걸쳐 영주문화예술회관 까치홀에서 무대에 오른다.

최대봉 작가는 “우리고장에는 일제시대 나라를 되찾기위해 온몸을 던진 독립 투사들이 많다”며 “광복절을 맞아 송씨 형제의 항일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라와 겨레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뮤지컬을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훈처 국가공훈록에 나타난 송씨 형제

■ 형 송영호
생몰년도 : 1903. 7.22 ~ 1968. 8.24
출신지 : 경북 영주
운동계열 : 군자금모집
훈격(연도) : 애족장 (90)
공적내용 :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25년 3월(음) 북경(北京)에서 김창숙(金昌淑)·김화식(金華植)·이봉로(李鳳魯) 등이 장기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내몽고(內蒙古)지방을 개간, 그 이익금으로 무관 학교를 설립하고자 계획했다.

또한 독립군은 둔전제(屯田制)로 양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김창숙·김화식 등이 만두 장사로 변장하여 1925년 8월 국내로 들어와 충청·경상도 지역의 유림과 부호를 대상으로 20만원을 모금하고자 했다.

1926년 4월에는 상해로 탈출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경북 영주에 있는 본인 집에서 일경에게 피체되었으며, 1927년 3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 동생 송재호
생몰년도 : 1906.10.12 ~ 1974. 7.12
출신지 : 경북 영주
운동계열: 국내항일
훈격(연도):애족장 (90)
공적내용: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25년 6월 무관학교 설립자금 모집을 위해 북경에서 입국한 제2유림단(儒林團)의 핵심인 형 송영호(宋永祜)와 함께 활동하면서 본인 소유의 논 1천300여 평을 매각한 대금 600원을, 형을 통해 김창숙(金昌淑)에게 군자금으로 송금했다.

1926년 2월 일경이 형 송영호로 오인해 피체됐으며 심한 고문을 받다가 자살을 기도했으나 생명은 건졌다. 그후 부인 유임이(柳任伊)도 비명횡사케 되어 더욱 항일의식이 고양됐다.

1927년 9월 영주군의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 회원 및 영주청년동맹(榮州靑年同盟) 집행위원으로 항일의 선봉에서 활동했으며 1930년 3월 7일 일경에 피체됐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31년 국내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탈출,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봉천성(奉天省) 안동(安東)에서 일경에 피체돼 2개월의 구류처분을 받은바 있으며 서울 팔판동(八判洞) 등지로 이주하며 항일운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