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의 최대 방송국 중 하나인 문화방송이 파업 중이고 사장은 해임위기에 몰려있다. 그렇지만 문화방송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입니까? 아니면 민영방송입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대부분 민영방송이라고 답한다. 주식회사 문화방송이고, KBS와 달리 시청료를 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주인은 누구입니까? 대부분 여기서 말문이 막힌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이다. 그 이유는 주인이 공익재단이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방송의 대주주는 70%의 주식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이다. 나머지 30%는 정수장학회(전 5.16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송문화진흥회와 정수장학회는 어떻게 문화방송의 주인이 되었을까? 그 역사적 이면에는 한국 방송의 굴곡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재 서울 본사와 17개의 지방 자회사로 구성된 문화방송의 뿌리는 1959년 부산에서 민영방송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사주 김지태는 부산에서 섬유회사와 고무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이었고, 1949년부터 부산일보를 인수해 운영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무소속과 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정치인이기도 했다.

김지태가 설립한 부산문화방송은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중계보도하며 많은 청취자를 확보했다. 부산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김지태는 2년 후 서울에도 문화방송을 개국했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김지태와 가족을 부정축재와 밀수 등의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했고, 김지태는 부산일보와 문화방송을 5.16장학회에 헌납한 후 석방이 되었다. 이후 김지태는 섬유산업을 이끈 공로로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무역훈장을 받는 기업인이 되었고, 1982년 사망했다.

사실상 박정희 정권의 소유였던 문화방송은 1960년대 말까지 전국의 6개 주요도시에 지국을 설치하고, 7개 도시의 지역방송과는 네트워크 가맹계약을 맺어 13개의 지역방송사를 가진 전국 네트워크로 성장한다.

그러나 1969년 경영난에 봉착하자 박정희 정권은 5.16 장학회 소유 주식의 70%를 대기업에게 강제양도한다. 주식은 양도하되 의결권이나 매각권은 주지 않았다. 대기업의 자본을 이용하되 방송의 경영권은 여전히 박정희 정권이 갖는 구조였다.

박정희 정권의 뒤를 이은 전두환 정권은 대기업이 갖고 있던 문화방송의 주식 70%를 KBS에게 양도하도록 요구한다. 가맹 계약을 맺은 지역방송사 주식도 51%이상을 KBS에게 양도하도록 강요한다. 중앙의 KBS만 통제하면 전국의 KBS 지국은 물론이고, 전국의 MBC도 저절로 장악하는 지배구조를 만든 것이다.

6월 항쟁으로 신군부가 퇴출되고, 방송민주화 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되었지만, 민주화 세력 중 어느 누구도 독재정권이 구축한 방송지배구조, 즉 중앙방송이 지역방송을 소유통제하는 구조는 고치려들지 않았다.

방송민주화의 명분으로 고작 손을 댄 것이 MBC 주식의 양도였다. 독재권력자의 사유물이나 다름없던 문화방송의 새 주인을 만들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설립한 것이 방송문화진흥회이다.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제정되면서 비영리공익법인으로 방송문화진흥회가 설립되고, 문화방송 주식의 70%를 소유하며 사장의 임명권, 해임권을 갖는 막강한 단체가 되었다. 그러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의 임명권은 방송통신위원회에, 방송통신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주면서, 문화방송은 여전히 정권의 통제를 받는 방송으로 남겨두었다.

그 결과 문화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친정권 인사로 경영진이 구성되는 정치적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MBC나 KBS처럼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중앙의 방송은 권력의 압력이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권유지나 정권찬탈에 전념해야하는 정치세력에게 전국방송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산이 없다.

문화방송의 모순과 비극이 종결되려면 중앙이 지방을 장악하는 시대착오적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폐기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처럼 중앙방송국은 없이 지역방송국만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거나(서울에 위치한 본사는 서울지사가 되는 것이다), 독일처럼 지역방송이 중앙방송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지역분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장은 검찰수사를 받고, 근로자는 파업을 하고, 시청자는 외면하는 지금과 같은 문화방송 사태가 주기적으로 되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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