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강선대 두향묘소에서 두향제를 지내고 있다

퇴계의 생애에는 ‘2(두)’자와 ‘8(팔)’자가 팔자처럼 뒤따라 다닌다.

우선 그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소생으로 8남매의 막내였다. 15세 때 삼촌의 손에 이끌려 영주의 푸실[草谷-현 사일마을]을 첫 방문한데 이어 스물한 살 청년 퇴계가 푸실마을을 두 번째로 다시 찾은 것은 동갑내기 김해 허씨에게 장가들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퇴계는 영주와 깊은 MOU를 체결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꿈같은 신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칠년 만에 허씨 부인이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둘째아들을 출산한 지 두 달이 채 못 되었을 때였다. 몇 해 뒤 그는 안동 권씨와 재혼을 하지만, 권씨 부인은 정신이 혼미한 사람이었다. 다림질하다가 옷을 태워 퇴계가 붉은 천으로 기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조문을 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권씨 부인은 그나마 오래 살지도 못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권씨 부인마저 저 세상으로 보낸 지 두 해만이었다. 더구나 군수로 부임한지 두 달이 못되어 둘째 아들마저 앞세우게 된다. 그 해가 1548년이었다. 부인의 삼년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처복(妻福)이 없는 팔자를 알아차린 퇴계는 더 이상 재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 기구한 퇴계의 시린 옆구리를 관기인 두향이가 잠시 채워주게 되는데, 그 때가 두향의 나이 18세, 퇴계는 48세였다. 두 사람의 팔자가 겹치는 꼴이었다.

하필이면 그녀의 이름마저 ‘두〜향’이었을까? 두향은 원래 양가 사람이었다. 일찍부터 거문고와 시문(詩文)을 익혀 어느 경지를 갖추었다. 그래서 능히 퇴계와 시문을 나눌 수 있었으며, 두향의 이런 점을 퇴계가 어여삐 산 듯하다. 그녀는 팔자 때문인지 조실부모(早失父母)하여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퇴기(退妓)에게 의존하다보니 스스로 관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정 많은 퇴계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두향의 팔자를 거두어 주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두향은 자신의 어미가 키우던 매화를 퇴계의 사랑방에 전한다. “매화는 본디 고상하고 아담하여 속기가 없고, 추위 속에서 더욱 아름다우며, 향기가 호젓하고 격조가 높아, 뼈대는 말랐지만 맑은 정신으로 찬바람, 눈보라에 시달리면서도 곧은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매화와 함께 심신의 안정을 찾으십시오.” 라는 격조 있는 인사와 함께.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퇴계의 매화시첩 118수가 모두 두향을 만난 이후에 써진 작품이라 한다. 두 부인과 자식을 연달아 잃고, 급속 냉각되었던 퇴계의 썰렁한 마음에 두향의 따스한 가슴이 덮여진 모양새랄까. 두 가슴이 포개지면서 퇴계는 광속으로 안정을 되찾아 갔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부임한 지 9개월 만에 단양을 떠나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의 형 온계가 충청감사로 부임하면서 직속상관이 되자 자신은 사직을 청한 것이다. 조정은 그를 인근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겨주었다.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관기를 데려갈 수 없다는 법도 때문에 퇴계는 두향을 홀로 두고 죽령을 넘어야 했다.

전날 밤,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말이 없던 두향이 슬며시 속치마를 벗어 퇴계에게 내민다. 두향의 두 폭 속치마에 먹물이 배어나갔다. 두 줄이었다. 더 이상은 쓸 수가 없었다.

死別已呑聲(사별이탄성)-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惻(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가 그지없네.

퇴계가 떠난 뒤 두향은 다른 남자를 섬길 수 없음을 군수에게 고하고 관기를 벗어나 장회나루 건너편에 움막을 짓고 혼자 살게 된다. 죽령을 사이에 두고 홀로 살던 두 사람은 이후 영원한 이별로 이어져 퇴계가 7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재회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간간한 서찰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강산을 두 번이나 바꾸고 나서, 두향의 나이 38세, 퇴계 세수 68세 되던 해, 두향은 직접 키우던 홍매화 화분을 도산서당으로 보낸다. 그 옛날 전별시를 써 주었던 두 폭 속치마와 함께…. 내색은 안했지만 하루도 잊지 않고 있었던 퇴계는 오언절귀가 적힌 두향의 속치마에다 칠언절귀를 추가해서 적는다. 다시 두 줄이었다.

相看一笑天應許(상간일소천응허)- 서로보고 한번 웃은 것은 하늘의 허락이었네

有待不來春欲去(유대불래춘욕거)-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이 다 가려 하는구나

퇴계는 자신이 먹던 우물 물 한동이를 길어 속치마와 함께 답장을 보낸다. 두향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정화수로 사용했다. 다시 두 해가 지나 두향의 나이 사십이 되던 해 물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물빛이 시커멓게 변했다. 이상한 예감을 느낀 두향이 나흘을 걸어 예안으로 퇴계를 찾아간다. 퇴계는 이미 운명하였으며, 그의 마지막 유언이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였다.

상여가 나간 상갓집 뒤 언덕에 웅크리고 눈물만 흘리던 두향은, 다시 단양으로 돌아와 퇴계와 노닐던 강선대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는 그날로 곡기를 끊어버린다. 그리던 퇴계의 뒤를 따라 천만리 머나먼 길을 훌쩍 떠난 것이다.

그로부터 두향은 448년 동안이나 강선대를 홀로 지키는 무덤이 되었다. 그것도 팔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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