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연화봉 쪽을 바라보는 소백산 조망

소백산은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소백산맥에 속해 있으며 정상은 주봉인 비로봉(毗盧峯,1439m)이다. 이름만으로는 작은 산으로 들리기 쉬우나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웅장한 규모의 산이다.

본래 ‘희고 높고 신령스럽다’는 뜻을 가지는 ‘밝’에서 유래한 산을 백산(白山)이라 하는데, 백두산, 태백산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는 몸집이 좀 작다하여 소백산(小白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키가 좀 낮을 뿐 몸은 결코 적은 산이 아니다. 그러나 백두산, 설악산 등에 비해 산세가 완만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어 여성적인 산으로 분류되며, 산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운해, 그리고 울창한 산림과 수려한 계곡이 서로 어울려 장관을 이루는 명승지로 봄에는 연화봉 일대를 뒤덮은 철쭉, 여름에는 솜다리(에델바이스)를 비롯한 들꽃으로 뒤덮힌 천상화원, 가을엔 만발한 붉은 단풍, 그리고 겨울에는 저 유명한 눈꽃과 칼바람으로 사계절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전천후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소백산에 대한 첫 기록은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939년)에 ‘소백산’이라는 지명이 출현하면서부터이다. 천년 넘게 사용된 셈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죽령(竹嶺, 당시 명칭은 竹旨嶺)’이라는 명칭이 소백산보다 훨씬 먼저 등장한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이사금 5년(158) 3월에 죽령[竹旨嶺]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계립령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인 것이다.

한반도 전통 산악신앙에 의하면 산에도 급수가 있다고 한다. 최고의 산이 영산(靈山), 다음이 명산(名山), 그 다음을 주산(主山, 또는 진산)이라 한단다. 주산 이하의 산들은 낮은 급으로 분류되 동네 산이 된다. 가장 높은 급수의 영산은, “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으며, 북의 백두산과 남의 소백산이 거기 해당한다”고 소백산 주변 사람들은 주장한다. 소백산이 지역민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영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소백산은 작은 백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실재로 400여 년 전, 죽령고개를 넘어오던 천하명풍 남사고가 풍기 땅에 들어서자마자 별안간 말에서 내려 소백산을 향해 넙죽 절을 하고는 “소백산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최고의 비결서로 꼽히는 정감록에도 숨어살기 적합한 열군데 승지 중 첫 번째로 소백산 남쪽 풍기 근처를 꼽고 있으며, 열군데 승지 중 4~5승지가 소백산 둘레 구석구석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십여 년 쯤 전이던가. 산림청에서 우리나라 산의 숫자가 총 4,44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산으로 분류될 만한 지명을 모두 합하면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 ‘한국의 100대 명산’을 선정하여 발표했던 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산 중에서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일 테지만, 소백산 사람들은 여기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의 100대 명산’이야 너무 당연한 것이고, 그 위의 급수인 영산 반열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중환은 『동국산수록』에서 ‘국중대명산(國中大名山)’이라 하여 나라의 큰 명산 12개를 지정했다. 금강산을 제1 명산으로 부르면서, 금강산을 포함한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총 8개의 명산을 국토의 등줄기에 위치한 명산이라 하여 ‘영척명산(嶺脊名山)’으로 따로 분류했다.

그밖에 칠보산, 묘향산, 가야산, 청량산을 ‘네 명산[四山]’으로 적었다. 그리고 이 명산들은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무리들이 수양하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명산의 요건에 은둔의 장소도 포함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명산의 요건으로는 산의 형상과 기상, 조망(眺望), 아름다운 계곡 등을 꼽는다. 여기에다 명찰(名刹)이 가미되면 금상첨화가 된단다. 소백산은 부석사를 비롯한 희방사, 비로사, 성혈사, 초암사 등 많은 명찰들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지만, 아예 봉우리 자체를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 부처님 이름으로 붙여 최고의 경지를 만들었으니 영봉이라고 우길 수밖에….

항간의 산사나이들이 분류해 논 우리 산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설악산은 20대 아가씨인데, 멋스러울뿐더러 언제 어디로 올라도 재미가 색다르지만 오르기는 쉽지가 않다나? 지리산은 30대인데, 산체도 풍성하거니와 골짜기도 깊고 어디에서라도 물이 철철 흐른단다. 북한산은 40대에 속하는데, 언제 누구라도 올라갈 수 있는 펑퍼짐한 산이라지 아마? 남산은 50대인데, 가까이 있어도 잘 올라가지 않는 그런 산이란다. 소백산은 어디쯤에 속하는 산일까?

많은 사람들이 명산을 찾아 오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명산의 기준은 어디에도 명확하게 제시된 것이 없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풍수지리 최고의 양백지간 명당의 울이 되어주는 소백산, 세계문화유산 사찰 등을 가볍게 품고 있는 소백산, 전국 십승지의 절반을 숨겨두고 있는 소백산은 국내 어느 산보다도 명산의 요건을 견실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깊숙한 산골, 물이 철철 흘러나오는 동천(洞天)을 찾아다니며 산골짝 땅값을 턱없이 올려놓는 사람들이 근자에 엄청 늘어나고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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