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호(시조시인, 본지 논설위원)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조지 칼린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운전을 느리게 하는 사람은 멍청이라 하고, 자기보다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미친놈이라고 한다.”고 일갈했다. 이 세태 비판이 그를 사회비평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자기중심적인 편견에 빠져 있는 현실을 이보다 아프게 꼬집은 말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자신만 세상을 똑바로 본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부류가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민주당 의원이나 공화당 의원들은 정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 당이 제안한 것이라면 어떤 정책이라도 지지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우리라고 뭐가 다를까. 우리 국회의원들도 야당일 때는 모든 정책의 발목을 잡다가 여당이 되면 일제히 찬성으로 돌아서는 아전인수 격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정치인의 뇌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판도가 달라질 때 쉬 흔들려서 거품도 끼는 것일 터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가끔 ‘거품’이란 말을 듣고 같은 뜻으로 버블이란 영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 같이 부정적인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가장 많은 용처는 아파트값을 이야기할 때다. 하지만 이 거품이란 말이 쓰이는 데는 아파트값 같은 데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우리네 생활 전반, 사회 현상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차라리 우리 의식구조 자체에 거품이 끼어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그러다 보니 삶 자체가 가식적이고 사회 전체가 불행감, 상실감 쪽으로 기울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과다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 모두가 과다하다.

심지어는 학교 교육까지 문화까지도 과다한 실정이다. 과유불급- 무엇이든 과다하면 변질하게 돼 있다. 자연도 부영양화가 되면 썩고 인간도 지나치게 부유하면 자생력을 잃는다. 스트레스가 쌓여 치명적인 질병이 되는 암(癌)이라는 것도 그 글자를 들여다보면 입구(口) 자가 세 개나 들어 있음을 본다. 많이 먹으면, 스트레스가 쌓이면 질병이 생긴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글자인 셈이다.

선비의 고장, 영주에도 해마다 계절별로 여러 가지 문화 행사나 예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심지어 달마다 인문학강좌 또는 시민교양강좌라는 이름으로 내로라하는 강사를 초청하고 있다. 행정관서에서는 마땅한 강사를 초빙해야 하는데 그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명도가 있는 강사, 유명 강사는 일정도 문제지만 강사료가 더 문제였을 것이다.

지역문단에서 초청한 문학강연도 그랬기 때문에 그 고충도 헤아릴 수 있다. 솔직히 강사료가 지나치게 고액이어서 개인적 친분만 내세운 채로 겨우 체면치레만 했었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인문학계 인물, 학교나 기관에서 근무하는 인물들까지도 강사료가 지나쳐서 아연 놀라운 바가 있었다. 배움은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풀기 위해 쌓은 게 아니었던가. 적어도 인문학계에 종사하는 분들은 ‘재능기부’라는 봉사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네 인간 삶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다. 주로 정신 분야에 속하면서 인간의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건강하게 조장해 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보수로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좀 더 겸허하게 접근하고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입장을 십분 고려하자는 데서 하는 말이다.

적어도 인문학 강좌에 낀 거품만이라도 걷어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조금 이름이 알려졌다는 분네들의 의식구조에는 강사료의 액수가 자신들의 권위나 유명세의 척도쯤으로 착각하는 거품이 낀 것 같다. 옛 선비는 지인을 찾거나 맞이할 때 그저 진솔한 마음 하나로 족하지 않았던가.

외국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저서를 통해 이미 이름 높은 그분들이 갖는 모국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물론 그 나라에도 문학상이 있고, 꽤 다양하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문학상의 상금이 3000달러, 우리 돈으로 쳐서 3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의 백일장 상금도 그 정도다.

이것은 참 놀라운 비교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중앙 문학상 상금의 하한선은 1000만 원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학상에도 거품이 끼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 해서 외국의 어떤 권위 있는 문학상처럼 상금을 아예 없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이만큼도 족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나라가 온통 돈 잔치가 되어 버렸다.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령수당, 기초연금도 그러하다. 잘 먹고 특권 누리면서 잘 살았던 이들의 종착역이 의원배지가 된 지 오래다. 그분들은 축의금과 부의금을 내지 않거나 흉내만 내면서 자기네가 받아들일 때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다. 모두 과욕이다.

우리는 지금 여러 가지 면에서 이만큼이면 훌륭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거품을 먼저 뽑아내야 한다. 대도시에 비해 아주 열악한 문화예술 환경에서 살아가는 지역에서라도 넉넉한 인정을 실현하자. 거품을 걷어낸 지역행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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