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맑은 날을 매다-이 도 훈

아내가 빨랫줄을 매달라고 해서
빨랫줄을 찾습니다.

분명 한 뭉치 밧줄을 들통에 넣어두었는데
빗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마다 물기를 짜낸 것이 분명한 빨랫줄은 맑은 날과 또 다른 맑은 날을
양쪽으로 매야 할까요. 그러면 새들은 일렬을 배우고 나란히 라는 말을 갸웃거릴까요.
저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매려면 얼마나 많은 줄이 필요할까요.

줄에 매달린 빨래도 뼛속 깊숙이 끊어진 곳이 많았는지 뚝뚝 물을 끊어서 버리는 중입니다.
흐린 날이면 길고 팽팽했던 맑은 밧줄이 사라집니다. 세상 어디에도 흐린 날로 맨 빨랫줄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날 새들은 나란히 또는 일렬이라는 말을 잊고 하늘 여기저기로 헝클어질 것입니다.

빨래들은 흐렸다 맑아지곤 했습니다.
맑은 날의 끝을 잡아당기면 온갖 호우주의보와 비 올 확률이 묵직합니다.
들통에 가득 받아 놓은 빗물이 언젠가는 빨랫줄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워야겠습니다. 그러면, 맑은 날을 휘청휘청 걸어온 바지나 셔츠의 주머니 속에는 구겨진 빗줄기가 남아있겠지만 맑은 날은 여전히 가지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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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저편 집에는 복숭아나무와 외양간 기둥을 붙잡고 마당귀를 가로지르던 빨랫줄이 있었지요. 빨랫줄에는 늘 바지랑대가 중심을 잡았고요. 빨랫줄이 식구들의 옷을 널고 있지 않을 때엔 지도 그린 이불이라던가 하다못해 제삿날 제물로 쓸 생선이 고양이를 피해 매달려있었거나 그도 아니면 고추잠자리의 일렬과 이른 봄 집을 찾아온 제비 떼의 일렬이 빨랫줄에 있었지요. 어머니는 늦가을 끝물 가지의 배를 열십자로 잘라 빨랫줄에 걸어 말리기도 하였죠. 그 뿐인가요 비어있다 생각하는 순간 빨랫줄은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별과 달을 걸고 또 비가 오면 빗방울을 매달고 대롱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들통에 가득 받아 놓은 빗물이 언젠가는 빨랫줄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키워야겠습니다.’ 라고요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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