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시대 속 역사 기록
사라질 소중한 자료 남겨

“1910년 8월 28일 저녁, 군청으로 일본 통감부(統監府)의 전보가 도착한다. 다음 날로 일본제국과 조선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한일합병 공포 사실을 하루 전에 알려준 것이다. 당시 군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죄의식을 가지고 지역을 지키고 있었겠지만, 이젠 조선이 아닌 일본국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서글픈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최근 발간된 ‘일제강점기 영주’의 표지와 서문에 실린 내용이다.

(사)영주문화연구회(회장 김제선)는 구랍 28일 오후 4시 30분 제일교회에서 김인순 작가가 쓴 ‘일제강점기 영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의 영주를 사진과 글로 속속들이 담아냈다. 책 앞부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1937년 영주 행정관서와 학교,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을 주도했던 주요건물, 식민지교육현장 등이 사진으로 실렸다.

책의 제1장에는 당시의 캄캄했던 지역상황과 배경, 어두운 사회 속의 주민의식, 총독부 산하 공무원제도, 관료의 임용배치, 군행정과 군수의 역할, 일제강점기 영주군수와 11개 면장, 풍기출신 김병태 도지사, 동아일보 기사로 본 1934년의 영주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2장에는 지역산업과 경제에 대해 풍기인삼, 인견산업, 능금의 고장, 일반농업, 금융업, 상공업 등으로 분류했다. 3장은 사회적 실태와 변화로 철도교통과 중앙선, 육로 교통, 식민지 정책교육, 일제강점기 신교육, 중등교육, 종교에 대해 실었다. 마지막 4장에는 영주의 항일운동으로 한일합병 이전 의병운동과 지역상황, 대학광복단과 대동상점, 1910년 후반기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 영주의 3·1운동, 파리장서 참여, 영주유림단 의거와 해외독립운동기지 건설운동, 농민·청년·계몽·민족교육 운동, 영주의 격문사건, 순흥사립소흥학교 학생들의 항일운동, 영주의 독립운동가 등이 담겨있다. 사라질 수 있었던 영주의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 책은 영주시 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출간됐다.

이날 김인순 작가의 지인 이길훈씨는 “500쪽의 책을 쓰기위해 200자 원고지 3천매를 훌쩍 넘기며 기록했고 300점 이상 자료수집을 하는데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라며 “그는 부지런함을 몸에 베어있다. 그렇기에 이 책이 탄생시킬 수 있었고 박제될 수 있는 소중한 향토사의 자료들이 드러날 수 있었다”고 했다.

장욱현 시장은 “역사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며 “이런 책을 만들기까지 작가의 열정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후대에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영주의 향토사를 남겨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김제선 회장은 “일제강점기 영주는 생각만해도 우국충정에 가슴이 떨리는 말”이라며 “오랜 시간 자료찾기와 검색, 사진, 당시 신문기사 등을 토대로 집필한 김인순 작가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이날 영주시재향군인회 나진훈 회장은 헌시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독해 참석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김인순 작가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도움과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 책을 펴내기까지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큰절을 올렸다. 그는 “의회전문위원으로 3년을 보좌하면서 향토사와 관련한 책을 보기 시작해 20년 동안 80%는 관내외 곳곳을 다니며 자료를 찾아다니다 엮은 것”이라며 “이 책에 실린 자료를 놓을 곳이 없다. 시청에 자료실도 부족한데 역사관이나 행정사를 운영해 보관하면 좋을 듯하다”고 했다. 이어 “일제강점기는 조선총독부에 들어가면 자료가 많다”며 “광복이후 영주의 근대사가 필요한데 기록이 거의 없다. 지금도 사라지고 있어 기록해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근대사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김인순 작가는 32년 7개월 공직생활 후 퇴직해 2001년부터 지역 역사와 문화발전을 위해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해왔다. 각종 문화관련 위원으로 활동해오다 지난해 제22회 영주시민대상 수상자 선정됐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