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 본지논설위원)

지난 11월 24일, 문화예술회관 까치홀에서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프리소울 솔리스트 앙상블’이 함께하는 ‘가을음악회’가 열렸다. 첫눈으로는 기록적이랄 만큼 많은 눈이 내려 철탄산과 서천 둔치며 시가지가 새하얀 이불을 덮은 듯 동화의 세계를 연출한 가운데 음악회는 깊어가는 늦가을 밤을 장식했다.

창단 29주년을 맞은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는 감상할 기회가 별로 없는 시민에게 클래식 음악을 통한 문화생활을 누리도록 이바지했다. 이번에는 ‘프리소울 솔리스트 앙상블’을 초청하여 함께 공연했는데 ‘솔리스트 앙상블’은 ‘대구시립교향악단’, ‘경북도립교향악단’ 등 유수한 교향악단과 협연한 바 있고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도 수차례 공연했다.

30여명의 단원을 ‘17년처럼 ‘대구 예술영재교육원 오케스트라'의 김형석 지휘자가 지휘를 맡았다. 공연에 앞서 지휘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말로써 관객을 배려했다.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의 클래식 명곡 연주와 더불어 솔리스트 앙상블의 ‘즐거운 오페라’, ‘가곡’, ‘뮤지컬’, ‘팝’, ‘크로스오버’, ‘대중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맨 먼저 연주한 곡은 비제의 ‘카르멘 서곡’이었다. 카르멘 서곡은 워낙 유명하여 귀에 익었다. 메르메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소설보다는 오페라로 알려져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아이다’와 함께 오페라 음악으로 쌍벽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카르멘’이라는 집시여인에게 반한 호세 하사는 연적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만 자유분방한 카르멘의 마음을 붙잡지는 못한다. 투우사 에스카미요를 사랑하는 것을 눈치 채자 호세는 질투심에 겨워 카르멘을 향해 칼을 뺀다. 카르멘이 죽자 호세 자신도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내용을 보아서는 카르멘이 연인이던 호세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비극이다. 하지만 카르멘 서곡은 속도가 빠르고 거침이 없다. 힘이 넘쳐 카르멘과 호세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는 듯하다. 현악기와 관악기, 타악기가 한데 어울려 관객을 열광하게 만들어 객석은 박수를 치면서 음악을 따라간다. 이따금씩 애조 띤 선율이 있지만 들으면 절로 신명이 오른다.

솔리스트 앙상블 성악가들이 부른 ‘오 나의 태양’도 우렁차고, 중후한 합창이다. 이어령 교수가 ‘서양에 오 나의 태양이라는 노래가 있으면 우리에게는 달아달아 밝은 달아라는 민요가 있다’는 글귀가 상기된다. 동서양의 고유성을 지적한 말인 듯하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노래가 끝나자 갈채가 실내를 뒤흔드는데, 동쪽 객석 가운데쯤에서 ‘브라보’하는 남성 목소리의 함성이 들린다. 감동한 나머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손나팔을 만들어 환호하고, 모든 프로그램 공연이 끝난 뒤 있어야 할 ‘앙코르’를 서둘러 외친다. 연주자와 성악가들, 지휘자, 관객이 한데 어울린 분위기였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좀 오래전 여식이 교사 임용고사를 쳐 놓고 발표를 기다리던 중, 시험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의 배경 음악으로 들었던 곡이다. 그 때는 합격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낙방한 상처가 흔적으로 남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 탓인지 비감이 스며든 듯 좀 무겁게 들렸다. 하지만 다시 들으니 가을날의 풍요로운 들녘을 머릿속에 그린다. 고음의 노래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도 두렵지 않을 듯 당당하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와 성악의 차이점 때문인 듯싶지만 아마 음악을 들을 때 처한 형편 탓일 것 같다.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아리랑’은 지휘자의 해설처럼 뉴욕필이 평양에서 연주했던 그 곡이다. 서정어린 선율이 어머니의 약손인 양 가슴을 따사로이 쓰다듬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서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아리랑은 한민족’이라고 등식을 말해도 될 것 같다. 유튜브에 접속하여 뉴욕필의 평양공연을 보았는데 그 아리랑을 우리 고장의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여 감개가 새롭다. 시골의 오솔길처럼 정겹고도 한이 서린 선율이 오래 동안 기억될 것 같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오래 전에 찾았던 금강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을 살려낸다. 언제쯤이면 금강산에 마음대로 갈 수 있을까. 손뼉을 치고 ‘얼씨구’, ’조오타‘라고 추임새를 넣은 ’경복궁타령‘에는 어깨가 들썩이도록 흥이 난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글귀가 생각난다. 한 시간 반 남짓 즐겁고 신나고 행복했다. 무대에 서기에 앞서 단장과 단원들이 실력을 갈고 닦느라 무척 노력했을 터이므로 까치홀 입추에 여지가 없을 정도는 어렵더라도 객석의 삼분지 이라도 찼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학생들 음악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시 당국은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하여 시민들이 클래식 음악을 한층 더 가까이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케스트라의 단장과 단원들, 지휘자, 묵직한 목소리로, 하늘에 닿을 듯 아득히 높은 목소리로 노래한 ‘솔리스트 앙상블’의 남녀 성악가들,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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