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위나라 군주께서 선생께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는 먼저 사물의 이름을 바르게 하겠다(必也正名)고 대답했다. 정명은 사물에 맞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말(馬을) 말이라 하고 사슴(鹿)을 사슴이라 하는 것을 가리킨다. 말이 바르게 서야 나라가 바르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사상이다.

우리가 ‘바른 말 고운 말’을 강조하는 것도 일상에서 쓰는 말이 바르게 쓰여야 사회가 바르게 서고 말이 고와야 사회의 풍습이 아름답게 된다는 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도 그 뿌리는 공자의 정명사상에 두고 있다. 말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다. 그 기호와 사물이 일치해야 한다. 대제국 진나라는 당시 권력자인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 그 권위에 눌린 대신들이 모두 사슴을 말이라 하다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백성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국민’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국민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들이 쓴 국민은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줄임말이었다. 일제가 세운 국민학교는 황국에 충성하는 신민을 길러내는 학교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나라의 구성원을 뜻하는 본래의 뜻과는 다른 말이다. 근래에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것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함이었다.

개화기에 선각자들이 세운 학교에 ‘수신(修身)’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수신을 말함이었다. 1911년 일본교육령에 의해 세운 국민학교에도 수신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천황이 다스리는 황국에 ‘충량한 신민’, 즉 친일파를 길러내기 위한 과목이었다. 수신이라는 말의 뜻에서 한참 멀어진 말이다.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교육’(Education)의 본질적인 뜻은 학생과 환경과의 교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과를 말한다. 교사는 학생이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안내자 역할을 할 뿐이다.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다. 가르친다는 것은 주입식 교육에서 쓰이는 말이다. 지금 ‘교육하다’는 ‘가르치다’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교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교육활동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교육이라는 말도 현대교육학의 개념에서 멀어진 뜻으로 쓰이고 있다.

‘안보’(安保)는 다른 나라의 침략이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뜻한다. 모든 나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안보가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도 학교에는 ‘안보교육’이라는 말이 있었다. 안보는 나라가 하는 것인데 학생들에게 안보를 가르친 것이다. 여기에서 안보는 ‘반공’이라는 말과 같다. 말의 쓰임이 바르지 못하다. ‘안보교육’은 ‘반공홍보’라 함이 옳을 것이다. ‘빨갱이’라는 말도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나 노동당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부도덕한 주류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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