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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이십오년 후

기사승인 [708호] 2019.03.20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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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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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이었다. 헤아려보니 ’95년 8월이다. 벽지 고교 근무 교사로서 유럽 5개국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서구문명의 중심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이어서 마음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400여명을 태우고 비상하는 보잉747 비행기부터 경이롭다. 인간이 이루어낸 기기로서 새처럼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따를 것이 무엇일까 싶었다. 하루 밤이 지나도록 열 시간 넘게 날아 도착한 곳은 프랑스의 오를리공항이었다. 대합실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산속의 사찰처럼 조용하다. 몇 사람씩 모여 얘기를 주고받고 어디론가 오고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의 말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도착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가 싶어 살펴보니 타인에게 들리지 않도록, 밀어처럼 속삭이듯 대화한다. 홍세화의 저서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타인을 배려하고 인내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톨레랑스’라는 말이 떠오른다.

파리 관광에는 에펠탑과 노트르담사원에 몽마르트언덕이 빠지지 않는다. 몽마르트에 물랭루즈라는 곳이 있다. 붉은 풍차라는 뜻인데 캉캉이라는 춤으로 유명한 공연장이다.

가이드가 버스 안에서 단단히 일러준다.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임의로 야간에 외출하거나 술집을 찾거나 하는 일을 삼가라는 것이다. 거듭 당부하건데 ‘호기’를 부리지 말아 달란다.

얼마 전에도 밤에 홀로 물랭루즈 부근으로 나간 관광객이 실종되어 행방불명이라고 한다. 런던은 오래된 건물이 많은 옛 도시인 까닭인지 시내 길이 좁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가 있다. 차량들이 멈추어 섰을 뿐 신호등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통행하는지를 보았더니 이쪽 도로의 차량 한 대가 가면 이번에는 가로의 저쪽 편 차도에 있던 차량이 나선다. 한 대씩 번갈아가면서 교차로를 벗어난다. 운전자들이 알아서 순서를 지킨다.

영국 이튼칼리지는 고등학교인데도 칼리지로 불린다. 15세기에 세워진 이튼칼리지는, 재능은 있지만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국비를 지원하는 학교이다. 애초 건학 이념과는 달리 점차 비싼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부담하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영국 상류계급과 부유층 자제가 다니는 최고 명문 사립 고등학교이다. 재학생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돼지’를 앞세워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한 우화 풍자소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도 이튼칼리지 출신이다.

학생들이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6백여년의 역사를 쌓은 명문학교의 교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가이드와 대표자가 학교 관계자를 찾아 내부시찰을 요망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얼마 전에도 한국의 어느 지방의원들이 다녀갔는데 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내부 방문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흡연하지 않을 것은 물론 화장실과 세면대며 시설을 훼손하는 일 없이 깨끗하게 사용하겠다. 물이나 전기를 소비한 경비를 지불하겠다는 말도 했지만 대답은 불가였다. 고풍스러운 명문학교의 겉모습을 보고 앞뒤 교정을 거닐다가 학교를 떠났다. 푸대접을 받은 셈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공공기물을 함부로 다루며 큰소리로 떠들 듯 말하는 의원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어느 고장의 무슨 의원들이 다녀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번 있었던 일이 아닐 것 같다. 방문 오는 사람들마다 질서와 예의를 외면하여 우리가 대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웃 고장의 기초의원들이 캐나다에서 가이드를 폭행하고 접대부 있는 술집으로 안내하라는 등 민망스러운 요구를 하여 보도거리가 된다. 어쩌다가 손톱으로 얼굴을 긁었다는 말과는 달리 시시티브이에는 주먹으로 피가 흐르도록 때린 영상이 담겨 있어 거짓말도 밝혀졌다.

먼 나라에서 행패를 부리듯 폭행, 폭언을 하여 ‘충효고장’의 명예를 여지없이 실추시켰다. 25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튼칼리지의 내부 방문을 무산시킨 의원들의 후배들이 있는 모양이다.

오해할 것 같아 망설여지는데 ‘모든 나라는 국민의 수준에 적합한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하기는 애향심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입어 ‘누구를 탓할까. 그런 사람들을 의원으로 뽑은 우리가 죄인이지’라고 주민이 말한 기사를 보았다.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회의원이든 기초의원이든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애초 무슨 목적으로 의원이 되었는지 묻고 싶다.

지구촌에는 200여 나라가 있다. 우리의 경제규모와 올림픽 성적 순위는 세계 10위 안팎이다. 1인당 소득도 3만불을 넘었다. 문제는 권력을 차지하면 ‘갑’으로 둔갑하는 일부 의원을 비롯한 지도층이다. 높건 낮건 권력만 잡으면 사익을 추구하고 ‘갑질’을 못해 안달하는 지도계층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소용이 없다.

그럴리가 없겠지만 국회의원이든 지방의원이든, 입법공부를 하려고 가방을 들고 도서관을 찾는 의원이 되기는 어려운 디엔에이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생각마저 든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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