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
                     -송종규

내가 당신에게 집중하는 동안 당신은
태산처럼 커졌지만
다행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 짓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당신을 떠올려도 나는 이제 목이 메이지 않는다
우주 저편에서부터
기적처럼 저녁이 당도했고 그 봄날
나비처럼 사뿐히 당신은 사라졌다

사실, 이별은 아주 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이지만

오래 전부터 꽃들에게 이별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만 암묵적인 규칙이 있을 뿐이었다
어떤 경이로움이 엄습해 올 때 이를테면, 천둥과 우래 운무 같은 것까지
그들은 그것들을 꽃의 안쪽으로 들여놓았다

바닷가 언덕을 하루 종일 걸었다

세월은 충분히 깊어졌다, 무릎이 다 젖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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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전제하고 사랑을 내정한 것이 아니지만 이별 없는 사랑 또한 매력적이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암묵적 규칙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규칙아래 꽃은 ‘천둥과 우래 운무 같은 것까지 그들은 그것들을 꽃의 안쪽으로 들여놓았다’지요 아픔 없는 이별이 있을까요. 사랑이 클수록 그 아픔은 더욱 깊은 까닭에 절망하고 분노하며 여러 날 가슴 에이며 눈물 짓습니다. 이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목이 메이지도 않고 당신의 모습까지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지만 시인은 세월이 흘러도 무릎이 다 젖을 때까지 종일 바닷가 언덕을 걷습니다. 오늘 아침 노오란 민들레 한 송이가 보도블럭 틈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탓이지요. 무릎이 다 젖도록 걷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걸 꽃도 알지만 꽃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봄이니까요.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랑도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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