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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산 형세가 이끼 야(也)자를 닮아 ‘야곡(也谷)’

기사승인 [709호] 2019.03.28  11: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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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마을탐방[240] 이산면 석포2리 ‘야곡’

화합과 협력으로 살기 좋은 마을 만들어
1935년 정종주(봉화인), 학교 부지 희사

야곡마을과 학교 전경

이산면 석포2리 야곡 가는 길
원당로 번개시장에서 원댕이철도건널목을 건너 이산면 방향으로 간다. 영주고 앞에서 좌회전하여 용암대-돗밤실을 지나 조그냇재를 넘으면 석포2리다. 흑석사 표석 앞을 지나 1.2km쯤 내려가면 이산초등학교이고, 300m 가량 더 내려가면 야곡정미소가 나온다.

학교와 정미소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형성된 마을이 야곡촌이다. 야곡승강장에서 300m가량 더 가면 내성천이다. 지난 16일 야곡에 갔다. 이날 야곡경로당에서 김재식 이장, 정병권 노인회장, 심현자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저기가 야곡(也谷)”

역사 속의 석포리 야곡(也谷)
영주는 삼국시대 때 내이군(奈已郡)이라 했고, 통일신라 때는 내령군(奈靈郡), 고려 때 강주(剛州)-순안(順安)-지영주사(知榮州事)라 불렀으며, 조선조 태종13년(1413)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이 됐다. 1650년경 군(郡)의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야곡 지역은 영천군(榮川郡) 말암리(末巖里) 흑석방(黑石坊)이라 부르다가 1750년경 면리(面里)로 개편되면서 말암면 흑석리가 됐다.

그 후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말암면 흑석동으로 개편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순흥군, 풍기군, 영천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고, 영천군의 산이면(山伊面)·어화면((於火面) 일부와 말암면을 통합하여 ‘이산면’이라 했다.

이 때 야곡 지역은 영주군 이산면 석포2리에 편입됐다. 그 후 1980년 영풍군 이산면 석포2리, 1995년 영주시 이산면 석포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재식(67) 이장은 “석포2리는 샘골(4호), 흑석(20호), 학교동(10호), 야곡(20호) 등 산재부락(散在部落)으로 형성된 마을이지만 서로 협력하고 화합하면서 살기 좋기로 으뜸가는 마을을 만들었다”며 “선대로부터 좋은 전통이 이어지는 선비마을”이라고 말했다.

이산면 석포리의 유래
1914년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새로 생긴 이산면은 이산서원(伊山書院)에서 유래됐다. 퇴계 선생이 쓴 이산서원기에 보면 “원래 이 지역은 산이(山伊)인데 조금 바꾸어 서원이름을 ‘이산서원’이라 칭한다”고 썼다. 원리(院里) 지역은 조선시대 때는 산이면(山伊面)이었는데 일제 때 이산면(伊山面)으로 개칭됐다.

예전에 백암(柏巖) 김륵(金륵,1540-1616) 선생의 아들 번계공(金止善,1573-1622)이 동천(東川, 지금 내성천)을 돌려 넓은 농토를 얻으니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따 지명을 번계(樊溪)로 했다.

이 때 개(浦)를 돌렸다(反)하여 반포(反浦, 석포1리)라는 지명이 생기기도 했다. 석포리는 흑석(黑石)의 석(石)자와 반포의 포(浦)자를 따 ‘석포리(石浦里)’가 됐다.

이끼 야(也)자 지형

야곡(也谷)의 유래
‘야곡’이란 이끼 야(也)자에 골 곡(谷)자를 써 야곡(也谷)이라 부른다. 이 마을 김병익(74) 씨는 “마을 앞산에 올라 산줄기의 형세를 살펴보면 이끼 야(也)자와 꼭 같다”면서 “풍수설에서 말하는 이끼 야(也)자 명당이 이곳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연안김씨 영주종친회 김원영 전 회장은 “야곡에는 만취당(晩翠堂) 김개국(金盖國,1548-1603) 선조님의 조부이신 김복흥(金復興,1482-1537) 할아버지의 묘소를 비롯하여 만취당의 선·후대 묘소가 여러기 있다”며 “예전에 선조님들께서 ‘이끼 야(也)자 명당터를 잡아 묘(墓)를 쓰고 야곡(也谷)이라 했다’는 이야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동 전경

일제 때 야곡에 학교설립
1933년 우리나라 도처에서 신교육운동이 활발했다. 석포리 지역 유지들도 이산공립보통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1934년 4년제 보통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원리 민가를 빌려 임시 개교했다.

그러나 1935년까지 부지물색과 기금마련이 되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했다. 급기야 면민이 모두 나섰으나 자금 염출이 어려운 실정이어서 학교설립이 허사로 돌아갈 형편이 됐다. 이 때 석포리 야곡에 살던 정종주(鄭種周, 봉화인) 선생이 학교 부지 2천480평을 내놓았다. 이에 교실 2칸, 교무실 1칸, 변소 4칸을 지어 1938년 4월 1일 2학급 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정병권(77) 노인회장은 “학교 부지를 희사하신 정종주 선생은 저의 3종조부 되신다”며 “당시 지역유지로 유림대표로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야곡 학교동에는 지금도 봉화정씨 10여호가 살고 있다.

오랜 역사와 훌륭한 전통을 이어온 이산초등학교는 선비의 고장 영주, 소백산 자락, 내성천이 흐르는 곳에 개교하여 총 82회 3천97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최첨단 교육시설을 갖춘 이산초등학교는 ‘창의로 배움 가득’, ‘배려로 우정 가득’이란 지표로 한국 초등교육을 선도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야공정미소

야곡정미소
야곡마을 가운데 야곡정미소가 있다. 정병권 노인회장은 “해방 후 상운 사람 우병락 씨가 설립했고, 1958년 영광중 교원으로 있던 이승세(1928生) 씨가 인수하여 농촌발전에 기여한바 크다”며 “당시 이승세 씨는 도정업과 농업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대를 이어 정미소를 경영하고 있는 이종화(56) 사장은 “선친께서 이룩하신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20여 년 전 시설을 현대화 했다”며 “예전에 원동기로 하루종일 하던 작업이 지금은 1시간이면 끝난다. 시설의 현대화만큼 지역농업이 발전하기를 바라며, 나보다 젊은 세대들의 귀농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녀회 롯데월드
노인회 남해관광

야곡경로당
야곡경로당 벽에 대한노인회영주지회에서 석포2리경로당에 준 표창장이 걸려 있다. 회원들 간 합심 단결하고, 지역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한 공로로 받은 상이다.

채교식(80) 어르신은 “이 상장은 늘 마을을 위해 수고하신 정병권 회장님과 김재식 이장 그리고 심현자 부녀회장을 보고 주는 상인 듯하다. 다음 주에는 노인회에서 남해로 관광을 떠난다.
이와 같은 행사추진 또한 마을지도자들이 마을을 잘 이끌고 있다는 증표”라고 말했다. 삼천포로 관광 떠나는 날(3.21) 새벽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김재식 이장이 준비물을 한 트럭 싣고 왔다.

김병덕(73) 씨는 짐을 옮겨 실으면서 “이장은 할 일도 많다”며 “이런(관광) 일 외에도 어르신들을 돌보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농사일까지 헌신적인 봉사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3월 9일에는 부녀회에서 롯데월드를 관광했다고 한다.

홍경순(66) 부녀회부회장은 “롯데월드에 가서 타워 전망대(120층)에 올라 서울을 조망하고 아찔한 순간도 체험했다”며 “우리 부녀회는 심현자 회장님을 중심으로 합심하여 크고 작은 마을행사들을 성황리에 치룬다. 부녀회원이 곧 노인회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야곡마을 사람들
이산초등학교 소나무
안화희, 황늠이, 손옥임, 홍경순 씨

야곡마을 사람들
야곡 학교동에 경로당이 있다. 학교 옆 골목으로 들어가 논둑길을 따라 경로당 앞마당에 도착했다. 기자의 차를 보고 다가서는 분이 이장인 듯하여 “이장님 안녕하세요?”라고 했더니 “아이고,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친절미소로 화답했다.

경로당 안으로 들어갔다. 부녀회에서 준비한 떡과 과일을 먹으면서 정나누기도 하고 취재도 했다. 심현자(64) 부녀회장은 “정병권 회장님과 김재식 이장님께서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늘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마을이 됐다”며 “이는 선비마을의 좋은 전통이요 마을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김순자(74) 씨는 “마을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녀회의 노고가 크다”며 “겨울 내내 경로당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많이 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최성순(75) 씨는 “예전에는 마을마다 아이들이 많아 동네가 시끌벅적 했는데 지금은 노인들만 산다”면서 “큰 마을에 초등학생이 1명뿐 이라니 걱정이다. 또 마을에서 제일 젊은 청년이 56세 1명뿐이라니…”라고 말했다.

손순자(73) 씨는 “예전에 학교 운동회할 때는 학생수가 600명이 넘었고, 수천명이 북적였다”며 “지금은 학교에 아이들이 있는 듯 없는 듯 노란버스만 분주히 드나든다”고 말했다.

경로당에서 나와 학교로 걸어갔다. 「어린이가 중심인 숲속학교」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교사(校舍) 중앙에 소나무동산이 있고, 소나무 아래 비(碑)가 있다. 「1946년 당시 5학년(담임 강일수) 학생(대표 정종수)들이 학교 앞산에서 소나무 4그루를 캐다 심었는데 그 아기소나무가 커서 거목이 됐다」고 새겨 놓았다.

김재식 이장
정병권 노인회장
심현자 부녀회장
채교식 어르신
최성순 씨
김순자 씨
김병덕 씨
김병익 씨
손순자 씨
이종화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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