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비켜준다는 것

- 안도현

둥굴레 새싹이
새싹의 대가리 힘으로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게 아니다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주었으므로
저렇드키, 저렇드키
연두가 태어난 것

땅이 비켜준 자리
누구도 구멍이라 말하지 않는데
둥굴레는 미안해서 초록을 펼쳐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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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봄이 따뜻한 것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봄이 날마다 푸르러 지는 것이었나 봅니다.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온 것이 아니라 땅이 제 몸 가죽을 열어 비켜준 것이었습니다. 비켜준다는 것, 상대방이 먼저 지나가도록 한켠에서 잠시 속도를 멈추고 수월하도록 마음을 쓰는 일입니다. 눈 속에 꽃을 피운 복수초 그 주변 동그랗게 눈 녹은 자리도 눈이 자리를 낸 것, 버드나무 버들강아지도 버드나무가지가 몸가죽을 연 것, 저 숲속의 나무들도, 강변의 잔디들도, 풀밭위에서 풀을 뜯는 염소들도, 아가들도, 오래전에 지어 드린 아버지의 유택도 어느 것 한 가지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켜주는 마음, 그 비켜주는 마음을 가려주는 마음이 있었기에 세상은 푸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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