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 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명심보감에는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이라는 말이 있다. 먼 곳의 친척은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가까운 이웃이 멀리 있는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다.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살갑게 지내라는 가르침인데 우리는 가까운 이웃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 사는 서기 400년부터로 기록된다.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략한 이래 고려 말, 임진왜란, 구한말, 일제강점기까지 만행과 악행으로 끊임없이 한반도를 괴롭혀 왔다. 모두 과거가 되었지만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은 아직도 피해자가 생존해 있어 우리로서는 그 아픔이 진행 중이다.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과거사를 툭 털고 갔으면 좋으련만 가해자는 솔직한 사과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언행마저 하고 있어 한일관계의 바탕을 껄끄럽게 하고 있다.

요즘 한일 두 나라는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니라 일본 호라는 기차와 한국 호라는 기차가 한 선로 위에서 마주보고 달려오는 형국을 연출하고 있다. 양쪽 다 서로가 끝장날 때까지 가보자는 기세이니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원인은 일본이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산업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수출을 규제한 데서 기인한다. 한국에 반도체산업의 핵심부품을 팔지 않겠다는 심사이다. 그들은 수출 규제 이유를 엉뚱한 데서 말하고 있지만 실은 소녀상 문제라든지 위안부 재협상, 일제강점기 징용배상판결 등에 대한 불만일 것으로 추측되고 일본 내에서도 일부언론은 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타격을 가하고 있으니 이는 보복이다.

민간에서는 일본에 안가고, 안 먹고, 안 산다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이 현상을 보고 일본은 냄비근성에 비유하며 오래 못갈 것이라고 조롱하는 가운데 우리도 이번만은 다르다며 결심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은 2차 제재를 가할 것으로 으름장을 놓더니 오늘 아침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가히 경제 전쟁이다. 그들이야 선제공격이니 2차, 3차 등의 단계를 계획하고 있겠지만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게 되는 우리 경제의 수장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해당 기업의 대표가 일본을 급히 다녀와도 빈손이었고 의원들이 미국, 일본을 연달아 방문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며 일본은 우리와의 대화도 미국의 중재도 거절하고 있다. 우리를 상대로 오랫동안 무역 흑자를 냈으면서 정치적 유감을 경제에다 풀어 안면몰수 하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싶다. 일본을 더 이상 믿어도 될 것인가. 어쩌자고 우리는 그렇게 오랜 세월 당했으면서도 산업을 일본에 그토록 깊이 의존해 왔던가. 우리 내부를 향해 묻고 싶기도 하다.

우리의 국방력이나 경제력이 일본을 능가 하거나 견주는 정도만 된다고 해도 일본은 우리의 요구 없이 과거사를 사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보복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사태는 우리를 만만히 본 데서 출발된 기획인 것 같다. 국민적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극일(克日)이 진작 됐어야한다는 통한이 들고, 아직 못했으니 앞으로 극일(克日)은 우리민족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작심하고 시작한 일이니 일본은 이쯤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장기간의 고통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NO 일본’ 은 ‘NO 한국’ 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좋은 방법이 되지 않는다. 일제(日製)에 의존해 온 산업을 지양하고 반도체산업의 핵심부품 국산화 성공만이 해결방법이다. 정부도 핵심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조속한 투자를 하겠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우리 모두는 지근거리 이웃인 일본이 갑자기 적(敵)의 얼굴을 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흥분과 냉철을 오가며 잠 못 이루는 생각 깊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국민이 진정으로 위대하다. 우리는 위기 앞에서 결속력이 강한 민족이지 않은가. 이 사태를 결국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바꾸어 놓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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