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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봉의 문화읽기[197] 넝쿨과 땅벌

기사승인 [729호] 2019.08.23  1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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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봉(작가)

삽화 이청초

작은 정원이나 텃밭을 경영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꽃나무나 작물들을 타고 올라 순식간에 뒤덮어버리는 넝쿨들이 얼마나 성가시고 고약한 놈들인지, 잘라내고 걷어내어도 돌아서면 다시 또 기어오르고 타고 오르는 그놈들의 집요함에 넌더리를 내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상사는 여름 내내 작은 뜰에서 피고 지던 원추리 빈 꽃대와 잎들을 정리한 다음 그 옆 영산홍 무더기를 무참히 덮어버린 가시투성이 한삼넝쿨을 걷어내려던 순간 일어났다.

여기서 잠깐. ‘길게 뻗어나가면서 다른 것을 감아 오르기도 하고 땅바닥에 퍼지기도 하는 식물의 줄기’를 뜻하는 말은 넝쿨, 덩쿨, 덩굴 중 어느 것이 표준어일까? 넝쿨과 덩굴은 맞고 덩쿨은 틀리다. 덩쿨은 넝쿨과 덩굴의 잘못된 만남이 낳은 비표준어이다. 벽이나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끝 부위가 나선형으로 도르르 말린 것을 ‘넝쿨손’이라고 부르는데 영어에서도 기어간다 하여 ‘크리퍼스(creepers)’라든가 ‘러너스(runners)’ 같은 예쁜 이름들을 붙여주고 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도종환의 시 <담쟁이> 中)’ 담쟁이는 그렇게 우리에게 ‘같이의 가치’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세월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북동부의 8개 명문사립대학들이 ‘아이비리그(the Ivy League)’로 불리는 것은 건물들의 벽이 아이비(ivy), 즉 담쟁이로 뒤덮여 오랜 전통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창틀을 타고 기어올라 아침인사를 건네는 나팔꽃 넝쿨이나 유월의 뜰을 열정으로 수놓는 장미넝쿨들, 호젓한 과수원길 울타리를 꼼지락 꼼지락 타고 올라 오렌지 빛 작은 꽃잎들을 피우는 강낭콩 넝쿨들까지는 넝쿨들의 미담에 속한다. 그러나 미담은 거기까지다.

이제 불상사가 벌어졌던 며칠 전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넝쿨들은 작물이나 화초를 뒤덮어 생장을 방해한다. 한삼넝쿨이나 인동넝쿨 등에 휘감겨버리면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다. 한삼넝쿨의 잎과 줄기에 빼곡한 잔가시들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긁힌 상처가 나고 따끔거린다. 청가시넝쿨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여름 정원의 무법자다. 한 마디로 ‘언터처블(untouchable)’이다. 영산홍 무더기를 휘덮은 것도 모자라 바로 옆 배롱나무까지 기어 올라간 한삼넝쿨을 잡고 당기는 순간 손등에 “으악” 비명소리가 날 만큼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청가시넝쿨의 가시에 찔린 걸로 생각했지만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손등이 두꺼비 손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땅벌이었다.

‘벌집을 건드리다’는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공연히 건드려 화를 자초하다’라는 뜻의 우리 속담이다. 우거진 풀숲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땅벌 집을 건드린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했다. 땅벌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손등과 손바닥이 부어오르고 따가우면서도 은근한 동통(疼痛)이 삭으러들지 않아 퉁퉁 부은 손으로 겨우 운전대를 잡고 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음에도 붓기와 통증이 이틀 동안 손등을 떠나지 않았다.

옛날 좀 논다는 친구들 중에는 꼭 ‘땡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것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공포의 이름이었다. 땅벌이 표준어이고 땡벌과 땡삐는 사투리지만 그 어감이 주는 공포감은 땅벌<땡벌<땡삐의 순서일 것이다. <땡벌>이라는 노래가 있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당신은 못 말리는 땡벌/ 당신은 날 울리는 땡벌’ 도대체 그 노래 가사에 왜 땡벌이 들어가야 하는 지, 애태우는 연인을 어디 비유할 데가 없어서 땡벌에 비유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삼류 건달 조인성이 비열하게 부른 뒤에 이 노래가 뜨기 시작했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땅벌은 비열하다.

불상사가 일어난 지 사흘째 되던 아침 손등의 붓기가 숙어지고 통증도 희미해져서 다시 참사의 현장으로 다가갔다. 새벽에는 이슬도 내리고 기온도 써늘해서 벌들이 나대지 않는다는 이웃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살충제(킬러)부터 뿌리고 늘어진 한삼넝쿨을 움켜잡은 순간 다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놈의 땅벌에게 다시 한 방 호되게 쏘이고 만 것이다. 적어도 땅벌에 있어서만은 아무도 믿지 말고 넝쿨을 정리하는 일은 서리 내릴 때까지 기다리자고 굳게 다짐한다.

‘이제 일어나 가려네 이니스프리 섬으로/ 거기 나뭇가지에 흙 발라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려네' W.B 예이츠의 시(詩) 속의 이니스프리 섬도 내게는 더 이상 목가적(牧歌的)이 아니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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