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처마 끝
- 박남희
사랑의 말은 지상에 있고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지상이 뜨겁게 밀어올린 말이 구름이 될 때
구름이 식어져서 비를 내린다
그대여
이별을 생각할 때 처마 끝을 보라
마른 처마 끝으로 물이 고이고
이내 글썽해질 때
물이 아득하게 지나온 공중을 보라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
공중은 어디도 길이고
어느 곳도 절벽이다
공중은 글썽해질 때 뛰어내린다
무언가 다 말을 하지 못한 공중은
지상에 닿지 않고 처마 끝에 매달린다
그리곤 한 방울씩 아프게
수직의 말을 한다
수직의 말은 글썽이며 처마 끝에 있고
그 아래
지느러미를 단
수평의 말이 멀리 허방을 보고 있다
구릿빛 지느러미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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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초승달이 떠있다. 초승달 하나만 떠있다. 별 하나 없이 넓은 하늘에 달 하나만 떠 있다.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도솔봉이 탄다고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는 날이었다. 11월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날이었다. 이날 사랑의 말을 보고 있던 것이었을까? 이별의 말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이유도 없이 쓸쓸하였다. ‘지상이 뜨겁게 밀어올린 말이 구름이 될 때/구름이 식어져서 비를 내린다’ 비 소식이 일기예보에 있었던가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울고 싶어졌다. ‘이별의 말은 공중에 있다/공중은 어디도 길이고/어느 곳도 절벽이다/공중은 글썽해질 때 뛰어내린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제 몸을 힘껏 부딪쳐 맑게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