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시조시인·본지논설위원)

꼰대는 나이 많은 아버지를 일러 장성한 아들들이 사용하는 은어이다. 주로 고집이 세거나 꼼꼼하여 자녀들에게 수월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인데 가끔은 소통되지 않으나 결정권이 있는 조부모님들을 일컫기도 한다. 어쨌건 꼰대는 자기들 마음대로는 할 수 없는 연세 높은 어른을 지칭하는 그들만의 은어이다. 시대마다 꼰대는 있었겠지만 지금 꼰대의 대상이 되는 나이는 70대 이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꼰대를 싫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자기가 꼰대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혹여, 꼰대라고 할지도 모르니 꼰대에 속하지 않게 하는 처세법을 읽는다니 웃음이 나온다. 꼰대는 자기를 감추어야 하는 신분이며 들어서는 안 될 호칭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젊은이가 말하는 꼰대들의 학창 시절을 들여다보자. 개학날 방학숙제를 검사받는 풍경이 생각난다. 성냥갑으로 죽은 파리1통 내기 숙제가 있었다. 파리가 얼마나 많았기에 또 파리약이 얼마나 귀했기에 이런 숙제가 다 있었을까? 쥐꼬리 10개를 내라는 숙제도 있었다. 곡식을 축내고 병을 옮기는 쥐를 소탕하기 위해 학생들이 쥐를 잡고 그 증거로 꼬리만 잘라서 제출하는 것이 숙제였다. 쥐를 잡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오징어다리를 불에 그슬려서 숯 칠을 하여 선생님을 속였던 기억도 있다. 퇴비5킬로그램 내기도 과제여서 개학날 학교 가는 길이 아이들 머리는 안보이고 마른 풀 둥치가 이어지는 풍경도 있었다. 추수 후 들판에 떨어진 이삭줍기도 있었는데 논이 없으니 남의 논에 들어갈 수도 없는 학생들은 어디 가서 이삭을 주웠을까. 한 톨의 쌀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했던 가난한 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비가 오면 수해가 나고 안 오면 가뭄이 이어져 모심기를 못하던 때가 있었다. 가뭄으로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상황은 공부가 문제 아니고 온 국민이 먹느냐 굶느냐하는 절박한 문제였다. 작업복이란 명사도 없던 시절, 하얀 교복을 입은 채 세숫대야를 들고 바싹 마른 논에서 길게 줄을 섰다. 웅덩이를 파고 짜 낸 흙물을 대야로 퍼내 일렬로 선 학생들이 손에서 손으로 물 대야를 옮겨 논바닥에 부었다. 모든 것을 녹일 듯 한 뜨거운 햇살과 지독히도 목이 마르던 그 날이 푸른 물로 가득 찬 댐을 볼 때 마다 생각이 난다. 치산치수(治山治水)가 부국의 길이라는 말이 나오고 곳곳에 저수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고 동원된 일이 또 있었다. 지금의 까치홀 뒷산쯤이라고 생각되는데 방학 중에 소집되어 산으로 행진해 갔다. 송충이를 잡으려는 것이다. 온 산이 붉게 죽어가는 소나무로 가득했다. 생전 처음 보는 송충이는 어쩌면 그렇게도 징그럽게 생겼는지. 잡아넣은 깡통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모습에 기절할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체육시간은 운동장에 자갈을 골라내는 일을 하는 시간이고, 첫 시간은 운동장에서 잡초를 뽑을 때가 많았다. 실습지에 심어 둔 호박 밭에 물을 주기 위해 대야에 물을 담아 산비탈 실습지까지 오르내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학교 형편이 이러할진대 가정생활은 어떠했을까. 일 년에 운동화 한 켤레를 더 사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하고, 남자는 넷인데 남자용양말은 두 켤레 뿐이어서 서로 일찍 일어나야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가감 없는 팩트이니 그 시절 음식의 질과 의복의 질, 문화생활의 질을 열거해서 무엇 하겠나? 아니, 열거 할 것도 없다.

이러한 상황들은 산업화의 불이 당겨지기 직전, 가난을 벗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로서 탈 빈곤의 계몽의식이 싹틀 무렵으로 생각된다. 나라가 가난하여 모두가 무지한 시절, 학생들은 곧 노동력이었다. 생산현장으로 데려가도, 학교에서 인부와 같은 일을 해도, 수업 중에 오래된 교실 지하에서 뱀이 기어 나와 혼비백산을 해도,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판자로 세운 화장실을 써도 아무도 불평하거나 의의를 걸지 않았다. 오늘 날, 학교에서 인권이니 수업권이니 불법동원령이니 재량권이니 권리에 관한 모든 것이 꼰대들은 꿈도 꾸지 못한 용어들이었다. 그런 학창 시절도 당시로서는 선택받은 복된 인생이었다. 쌀이 없어 밥을 걸렀다는 말에 ‘쌀이 없으면 라면을 먹지’라고 말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믿지도 않을 것이며 단언컨대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적응하지도 못할 것이다.

오늘의 풍요 뒤에는 가난의 시절을 묵묵히 견디며 불편을 감수하고 이겨낸 꼰대들의 희생이 숨어 있다.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가난의 기억을 현재의 부(富)와 비교하면서 달라진 현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세대이다. 우리시대 꼰대는 배척과 경시의 대상이 아니라 굶던 시절에서 먹는 시대로 가기위한 견인차 역할을 했고 징검다리 구실을 한 세대로서 존경받고 위로 받아야 할 세대들이다. 자녀들이 싫어할까봐 혹은 제자들이 멀리할까봐 꼰대에서 탈피하려고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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