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哀哉哀哉(슬프고 슬프다)” 통곡한 제자

선생의 뜻 오늘에 되살려 ‘도덕국가 재건하자’

“농토와 마을을 버리고 이슬을 맞으며 산속에서 살다가 승냥이나 살무사에 물려 죽더라도 돌아오려 하지 않으니 온 고을이 폐허가 돼버렸습니다. 마을은 가시덤불로 덮이고 인가에 연기가 나지 않아 전쟁이 난 뒤보다 더 참혹하여 슬퍼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떨어집니다.”

1557년 가을 단양군수로 부임한 금계 황준량의 상소문 ‘민폐십조소(民弊十條疏)’ 일부이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말처럼, 황준량의 상소문을 읽고도 눈물이 나지 않으면 목민관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애민정신이 잘 드러난 명문장으로 꼽힌다.

임금 명종의 마음을 움직였고, 단양군민들은 이후 10년 간 가혹한 공납과 세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평해황씨 검교공파 금계종회와 경상북도가 주최하고,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사업회와 영주시가 주관한 ‘금계 황준량 선생 탄신5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지난 22일 오후 1시 영주시민회관에서 개최됐다.

이용태 기념사업회장
황한섭 검교공파 금계종 회장

1부 개회식은 오태동 전 대구MBC앵커의 사회로 개회하여 국민의례, 황재석 기념사업회사무총장 경과보고, 이용태(박약회장·퇴계학연구회장) 기념사업회장 기념사, 황한섭 검교공파금계종회장 환영사, 김관용 도지사 등 내빈 축사(신기훈 문화융성사업단장 대독), 기념사진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이용태 기념사업회장은 기념사에서 “금계 선생은 탁월한 자질을 타고난 학자요 목민관이었다”면서 “선생이 별세하자 퇴계 선생은 몹시도 비통해 하며 명정에 ‘오호망우 금계 황선생’이라고 직접 쓰고 만사와 제문을 짓고 행장을 지었다.

또 산소 앞 비석에 ‘성주목사 금계황공지묘’를 직접 썼다”고 했다. 이 회장은 또 “오늘 우리는 선생의 지조와 경륜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고 추모한다”며 “선생의 높은 뜻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나라를 도덕국가로 재건하는 일에 조금 이라도 기여할 것을 마음 속으로 다지자”고 했다.

장욱현 시장은 축사에서 “영주를 대표하는 선비 금계 선생 탄신 500주년 학술대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쁘게 생각한다”며 “영주시는 선생께서 남기신 선비정신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려 인성이 바로선 나라, 고매한 정신문화를 가진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 설 것”이라고 말했다.

2부 학술대회는 청렴의 표상(表象)인 금계의 사상을 연구해 올바른 선비정신을 현대에 맞게 계승하고자 개최됐다.

안동대 황만기 교수의 사회로 강구율 동양대 교수의 ‘금계 황준량의 생애와 기념비적 발자취’, 이종호 안동대 교수의 ‘금계 황준량의 수창시 연구’, 구완희 세명대 교수의 ‘금계 황준량의 관력과 목민활동’, 최석기 경상대 교수의 ‘금계 황준량의 경세의식과 정신지향’, 이수환 영남대 교수의 ‘금계 황준량의 서원활동과 교육론’을 차례로 발표했다.

한편 조선중기 금계 황준량 선생은 퇴계선생의 문하로 약관의 나이에 대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가 선정을 베풀어 가는 곳마다 백성의 칭송이 자자해 영주 선비의 높은 절의와 품격을 드높인 인물이다.

또한 미래를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백학서원(白鶴書院), 공곡서당(孔谷書堂), 녹봉정사(鹿峰精舍)를 세워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점도 큰 업적으로 남아 역사에 길이 빛나고 있으며 조선조 청렴의 표상으로 목민관의 모델로 칭송받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선비다.

이원식 시민기자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