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비 오는 날에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 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그 옛날 70년대 비닐우산은 파란 비닐 지붕에 투박한 대나무 살 그리고 빨간 손잡이, 대나무 기둥에 철사를 구부려 우산을 펴던,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훌러덩 뒤집히기 일쑤였던, 걸을 때마다 바람을 안고 날개소리를 내며 팔락거렸었다. 망가지고도 비닐우산은 그 역할이 많았다. 대나무살을 곱게 깎아 옷을 짤 때는 뜨게 바늘이, 연을 만들 때는 뼈가 되어 유용하였고 또 회초리도 되고 어린 모종의 지주대가 되기도 하였다.

산업이 발전되고 비닐우산도 그 모습을 바꾸었다. 세련된 문양의 비닐우산은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고 비오는 날도 걱정이 없이 팽팽하여 오히려 가시처럼 찌르게 될까 시인은 걱정이다. 장마가 왔다. 연일 비가 내린다. 추억의 우산이든 마음의 우산이든 우산을 접고 빗속에서 흠뻑 젖고 싶다. 황순원의 소나기 속 잔망스럽던 그 소녀처럼 땀내 나는 등에 업혀서...(상상이 너무 멀리까지 갔나?  어흐~)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