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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프리즘[132] 잊어진 이름들

기사승인 [712호] 2019.04.18  10: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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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서각(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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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하는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태어난 환경에 적응하며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더러는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총명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명하는 조선은 분명히 우리민족의 나라인데 조선인이 일본인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명하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빼앗긴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개, 돼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927년 스물넷 나던 해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처자식을 두고 독립투사가 되기로 했다. 임시정부가 있다는 상하이로 가기로 했다. 배편이 마땅하지 않아 타이완을 거쳐 가게 되었다. 타이완에 도착해 보니 그곳도 일본의 식민지였다. 빈손으로 집을 나섰으니 여비는 현지에서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타이중시의 부귀원이라는 찻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알바를 한 것이다.

1928년 일본 육군 대장 구니미야 구니요시가 타이완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구니요시는 히로히토 일왕의 장인이기도 했다. 명하는 구니요시를 처단하기 위해 독이 묻은 칼을 품고 군중 속에 숨어 있었다. 구니요시가 탄 차가 나타났다. 명하는 구니요시의 차에 올라 그를 찌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구니요시는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이듬해 패혈증으로 죽었다. 명하는 타이페이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사건은 조선 총독이 사임하는 간접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타이완 신문에는 취직이 되지 않아 절망하던 조선 청년이 스스로 죽기 위해서 이런 끔찍한 사고를 저질렀다고 보도되었다. 타이완에도 기레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들은 해방 후 아버지의 업적을 현창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조선은 해방되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나라를 찾기 위해 헌신적 투쟁을 한 독립투사를 외면했다. 1963년 독립유공자로 서훈은 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한을 품고 아들이 죽고 그의 아들인 손자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를 알리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 공무원에게 떡값을 건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의 노력으로 서울 현대공원에 조명하 의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이를 외면하는 대한민국에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가족을 거느리고 호주로 이민을 갔다. 독립투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더 기대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독립투사에게 왜 이렇게 야박했을까?

그것은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의 권력이 친일파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조명하가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이제 정부는 드러나지 않은 독립운동가,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제라도 숨은 독립운동가를 찾아 공적을 밝혀야 한다. 친일파가 활개를 치는 세상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일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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