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세상을 보는 눈에는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청안은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이고, 백안은 눈의 흰자위가 나오도록 업신여기거나 흘겨보는 눈을 말한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서 아는 옛 이야기 중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무학대사를 만나 나눈 이야기가 있다.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는 데 크게 기여한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도봉산의 절을 찾은 태조가 곡차를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너무 쪄서 마치 돼지 같아 보입니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 보아도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아니, 격의 없이 서로 농을 즐기려는데,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 같다고 하면 어쩝니까?”

“예, 본시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시쳇말로 무학대사가 태조에게 한 방 먹인 셈이지만, 태조의 눈은 백안이고, 무학대사의 눈은 청안이었던 것이다. 옛 일화처럼 청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이고 백안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돼지로 보이게 마련이다.

불교 능엄경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나온다. 한 가지 물이어도 서로 다른 네 가지 견해가 있다는 말이다. 똑같은 물이지만 천계에 사는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며,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이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견해가 다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작금의 남북평화모드를 두고 우리 정치판과 사회는 역시 청안과 백안으로 나뉜다. 남북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남북관계의 마중물이라 하는 이는 청안이고, 항상 속아왔으면서 다시 또 속임수에 넘어간다고 우려하는 이는 백안이다. 솔직히 세상사는 날씨 같아서 매 순간마다 달라진다.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며 지구촌 곳곳의 기상상태에 따라서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갈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만 깨닫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데서 각종 문제가 생긴다.

요즘 들어서 청와대는 자주 “드릴 말씀이 없다”의 낮춤말 표현을 즐긴다.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세상살이에 “할 말이 없다”니 어쩌면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할 말이 없다”라고 말 할 때는,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때, 그리고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싶을 때, 진짜 몰라서 할 말이 없을 때, 아니면 진짜 알리고 싶지 않은 경우나 너무나 죄송해서 말문이 막히는 네 가지 경우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말투나 태도를 보면 마지막 경우, 그러니까 너무나 죄송해서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높은 지지율을 보란 듯이 뽐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의 경우, 그것도 아니면 세 번째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의 수’가 모두 문제이니 문제다.

우선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라면 묻는 기자들, 더 나아가서 국민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무례하거나 그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국민의 명령” 혹은 “촛불 혁명 정신”마저 일회성 립 서비스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정부 여당의 머릿속 국민이란, 자신들을 항상 칭찬만 해주고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존재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세 번째의 경우처럼 몰라서 할 말이 없는 것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능력 부족’을 의미하니 문제다.

정권은 국민들과 관련돼 있는 사안이나 국가에 관한 모든 사안을 챙겨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혹시 알리고 싶지 않아서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반응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국가 차원의 외교적 문제에서는 분명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이유가, 외교 상대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상대의 기분을 잡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겠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외교 문제도 아닌 내치(內治)에 관한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사 문제나 다른 국정 관련 사안에 대해서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것을 알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들이 생각해도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조치 혹은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그렇게 국정의 투명성을 특별하게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일정까지도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약속 했던 정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국민들이 ‘알 필요’가 없는 사안들이 갑자기 많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렇게 투명성을 외치던 정권의 입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니 하는 말이다.

청안으로 보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겠지만 백안으로 보면 미운 사람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돼지로 가득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비극일까. 호국보훈의 달이 코앞이다. 가정의 달에는 정부 여당이 할 말 안 해도 될 말을 많이 했다. 청안이든 백안이든 “드릴 말씀이 없다”는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유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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