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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봉의 문화읽기[193] 술 권하는 사회

기사승인 [725호] 2019.07.18  10: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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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봉(작가)

삽화 이청초

지난 해 9월 25일 새벽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서 휴가 나온 한 청년이 만취한 상태의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어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결국은 사망한 불행한 일이 있었다. 22살의 꽃다운 젊은이였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고 피해자의 친구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청원에 40만이 동의했고 그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이 발효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음주수치 기준을 더욱 강화한 ‘제2 윤창호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면허정지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0.05%에서 0.03%로, 면허취소 수치가 0.1%에서 0.08%로 한층 강화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소주 한 잔만 먹어도 걸린다’는 것이다. 이 강화된 단속기준이 출근길의 숙취로 적발된 한 야구선수의 사례까지 더해지면서 술꾼들에게 어느 정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성공한 것 같다. “달려, 달려”하고 호기를 부리며 2차, 3차까지 이어가던 술자리가 줄어들고 미리 아침 출근길의 대리운전을 예약하는 등 음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증류주 소비량이 러시아, 라트비아, 루마니아에 이어 세계 제4위라고 한다. 우리보다 상위의 세 나라를 보면 추운 나라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속설이 맞지만 그 외의 다른 수많은 추운 나라들을 다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니 경이로운 순위가 아닐 수 없다. 술은 그 제조과정에 따라 크게 양조주와 증류주로 나뉜다. 과일이나 곡물을 발효시킨 양조주가 인류가 마신 최초의 술이었다.

대표적으로 맥주, 와인, 막걸리 등이 양조주에 속한다. 4~5세기 경 유럽의 수도승들이 증류기술(distillation)을 발견하면서 증류주의 시대가 열렸다. 대충 이야기 하자면 증류과정을 통해 맥주에서 위스키, 와인에서 브랜디, 막걸리에서 소주가 나왔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대략 알코올 함유율 20%를 상회하는 술을 증류주라고 한다면 막걸리, 맥주, 와인을 제외하고 소주, 위스키 등 독주 소비량이 세계 4위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사회가 되었을까? 『술 권하는 사회』는 1920년대에 나온 현진건의 단편소설이다. 동경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은 식민지 조국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술을 마시고, 그의 고뇌를 알 바 없는 무식한 아내는 잔소리만 늘어놓고, 그 지청구를 못 이겨 남편은 다시 술을 마시러나간다. 아마 아내가 오늘날의 여성이었다면 그 스트레스로 바가지를 긁는 대신 술을 마셨을 것이다.

개화기,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속도를 경험하면서 그 중압감이 우리를 술 마시게 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술집을 찾게 하는 주범일지도 모른다.

술에 대한 관대한 태도도 일조했을 것이다. “술이 죄지, 사람이 죈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말이다. 술만 취하면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도 술이 깨면 좋은 사람이고 주취폭력으로 동네를 불안에 떨게 한 사람도 파출소에서 훈방되기 일쑤다.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재판정은 ‘심신미약’이라는 애매모호한 법률용어를 앞세워 처벌을 경감해 준다.

유학이나 직장 일로 우리나라에 머물다가 제 나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다시 꼭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술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밤늦게 술 마실 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약하지도 세지도 않은 알코올 도수의 소주에다 온갖 안주를 곁들여 밤이 새도록 흥청망청 마실 수 있는 한국이야말로 술 마시는 자들의 천국인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술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는 TV 드라마도 문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술집으로 가고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아도 술집으로 간다. 부모덕에 일찍 높이 오른 젊은 실장님들은 우아한 조명의 술집으로 가고 서민들은 허름한 포장마차로 가는 게 다를 뿐이다.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빈 소주병들의 숫자는 드라마 속 인물이 겪고 있는 고뇌와 비극의 지표로 쓰인다. 그가 지금 이렇게나 아픈데 이 정도의 술쯤은 먹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의 결과물로 태어난 ‘윤창호법’을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와 개개인의 알코올 감수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나, 아직 안 취했어” 술 취한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술을 마실 때는 (스스로 술꾼으로 자처하는 자로서 뒤가 켕기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적정 선(線)을 정해 두고 기필코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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