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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문학의 거목 이동식(96세) 선생께 듣는다

기사승인 [735호] 2019.10.11  14: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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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창립된 아동문학회는 한국 아동문학사(史)의 최초로 기록되었다.
‘개나리 노란 배’ 시비
이동식 선생과 대담하는 이원식 시민기자
동요 ‘개나리 노란 배’
초등교과서(6-1)에 실린 ‘개나리 노란 배’

사람들이 “동심(童心)으로 살면 장수한다고 했어”
해방 후 오계초 교사로 부임, 아이들과 동시쓰기 시작
한국 아동문학 75년의 주인공, 지금도 동심으로 산다

지난 2일 노인의 날, 원로 동시인이시며 한국 아동문학의 거목이신 국원(國元) 이동식(李東植,덕산인) 선생을 찾아뵙고 장수의 비결과 아동문학 75년의 긴 역사를 들었다. 선생은 “옛 부터 ‘동심(童心)으로 살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손꼽아 보니 동시인들은 망백(望百)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꼿꼿하고 정정한 것은 다들 동심으로 살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식의 어린시절

“고향이 어디시냐?”고 여쭈니 “내 고향은 단산면 동원리 자봉(紫鳳)마을”이라며 “당시는 모두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지. 장수면 ‘가래(佳川)’가 외가인데 태어나기는 가래 외가에서 태어났어. 어릴 적 조부(윤종)님께서 동촌(피끝)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면서 집안 형편이 조금 좋아졌지”라고 했다. 소년 이동식은 조부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됐고, 일본에서 5년 동안 초중과정을 마치고 해방과 함께 귀국했다.

안정 오계초 교사가 되다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이동식은 단산면 사천리 새내서당에서 한문 공부에 열중하던 중 초등교사채용시험에 합격하여 21살 때 안정면 오계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됐다.

청년교사 이동식은 ‘아이들과의 만남은 하늘이 준 큰 선물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들을 맑고 밝게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 쓰기 지도가 우선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동시를 배우고 썼다. 이 교사는 아이들의 작품을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에 보내 신문에 실리게 했고, 큰 상도 많이 받았다.

이 교사는 글쓰기 지도사례를 전국 ‘글쓰기연구대회’에 나가 발표하여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옮겨 간 여러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글쓰기 지도에 전념했다.

선생은 “아이들의 동시가 신문에 실리고 상을 받고 좋아하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 하다”며 “그 아이들이 커서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가 된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이런 보람을 느낄 때마다 천기(天氣)가 내려 더 큰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시쓰기 지도교사 모임 결성

1950년대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도 글짓기 교육을 하는 학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때 영주에서 글쓰기 지도교사 모임을 주선한 분이 이동식 선생이다.

이 선생은 당시를 회상하며 “초임 이후 글쓰기 지도를 쭉 해오다가 1959년 8월 영주교육청에 근무하던 김동극 장학사와 나 그리고 김한룡, 임익수, 권기환, 강윤제, 최영호 선생 등이 주축이 되어 글짓기교육 강습회(17-18일)를 열었는데 모인장소가 부석사였다. 그 자리에서 아동문학소백동인회 창립을 결의하게 됐다”면서 “윤석중·김성도 선생을 고문으로 모시고 초대회장에 김동극 장학사, 총무에 김한룡 선생을 선임했다”고 말했다.

선생은 또 “1959년에 창립된 아동문학회는 한국 아동문학사(史)의 최초로 기록되었으며, 60년 역사를 이어온 아동문학회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며 “1960년 김동극 회장이 상주교육청으로 떠난 후 내가 16년 동안 회장을 맡았고, 그 후 김병기 선생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아동문학회를 잘 이끌어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자랑하고 싶은 것은 60년 역사가 문서로 시집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국보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열심히 학생 지도를 하면서 1970년 1월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짝 고무신’으로 당선되었으며, 1982년 4월 한국문협 영주지부장에 선출되어 3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개나리 노란배

선생의 동시 ‘개나리 노란 배’가 1988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펴 봤다. 국어활동 6-1 20쪽에 보면 「‘개나리 노란 배’에 사용된 색채어를 찾아보자」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개나리 노란 배’ 이동식의 동시는 다음과 같다. 「시냇가에 갔었다. 바람 따라 들길 따라. 동동 개나리꽃 하나 떠내려간다, 외나무다리 밑으로. 하얀 나비가 떠가는 배 위에 사뿐 앉았다. 개나린 개나린 노란배가 되었다. 나비는 나비는 하얀 손님이 되었다. 물길 따라 떠간다. 멀리멀리 떠간다.」

1999년 10월 이동식 선생의 시 ‘개나리 노란 배’ 시비가 영주공공도서관 앞뜰에 세워져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7년 7월 도서관 이전에 따라 시비도 가흥택지 선비도서관 정원으로 이전했다.

기자가 “개나리 노란 배 동요 들어 보셨냐?”고 여쭈었더니, “암, 들어봤지” “내 시(詩) ‘개나리 노란 배’를 ‘동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박근칠 선생이 내 마음을 들여다 본 듯 아주 유명한 작곡가에게 부탁해 노래로 만들었고, 각종 행사 때 불렀다고 하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글쓰기 지도가 가장 큰 보람

기자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 들려 달라”고 했더니, “초임교사로 오계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방과 후에 글쓰기 공부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하다 보니 평생 동심(童心)으로 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기자는 또 “장수의 비결이 있을까요?”라고 여쭈었더니, “그럼 있지”라며 “첫째는 조상으로부터 건강 체질을 물려받아야 하고, 둘째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듯이 어릴 적에 동시 쓰기로 마음이 아름다워지면 평생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고 했다.

선생은 끝으로 “1959년 부석사에서 결성된 영주 아동문학이 60년 역사를 이어왔다”면서 “이는 ‘선비의 고장 영주’, ‘아동친화도시 영주’의 자랑이다.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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