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바쁜 세무사의 고향 사랑법 “더 자주 가고 더 생각하겠습니다”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소작농 아들로 세무대 나와 국세청서 17년 공직생활

공직 퇴직 후 세무사로 활동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

 

철도고 전환 모교 영주고와 동창회 관계 정립 고심

모교 영주고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한 기여 활동 ‘훈훈’

시흥 선봉로타리클럽 회장 이취임식(2011년7월)
시흥 선봉로타리클럽 회장 이취임식(2011년7월)
영주고 동창회 송년회(2023년 12월)
영주고 동창회 송년회(2023년 12월)

황호식 세무사는 금년 초 영주고등학교 총동창회장에 추대됐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꼴로 고향에 온다. 동창회 행사와 지인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고향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자주 뵌다. 주 1회 이상 고향에 온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지난 15일 영주문화관광포럼 발기인 대회 및 창립총회 참석차 고향에 온 황 세무사는 다음 날 영주 시내의 친구 자녀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하룻밤을 고향에 묵었다.

황 세무사는 10년 전 재경 영주고총동문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안산에서만 20년 동안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안산세무사 업계의 터줏대감 격이다. 그는 세무사로 있으면서 공부를 계속해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황 회장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나 본인은 인터뷰 깜냥이 아니라고 사양하길 여러 번이다. 여러 번 강권하다시피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는지요?

봉화 문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영주중앙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문단에서 도촌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영주에서 다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초등학교부터 영주로 다닌 마을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교육열 모습이기도 하군요. 당시 교통도 불편했을텐데 어떻게 다니셨어요?

문단1리에서 영주까지 거리가 5키로미터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걸어서, 중학교 땐 자전거로, 고등학교 땐 버스로 다녔습니다. 버스는 삽재 밑에서 탔지만, 걷거나 자전거 타고 다닐 땐 문단1리에서 산길을 넘어 단운마을을 지나고 상망동을 지나면서 다녔습니다. 영주 중앙초등학교 졸업 후 영주중학교와 영주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외지로 가셨군요? 공부를 잘 하셨나 봅니다.

공부는 그냥… 열심히 한 정도이지요(함께 웃음)… 세무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반대학 진학은 엄두도 못냈습니다. 세무대학은 학비가 없었거든요. 세무대를 졸업하면 공무원으로 특별임용되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아버지가 소작농이셨어요. 아버지는 집도 없고 땅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세무서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시는 형편이었습니다. 저도 세무가 무엇인지 몰랐는걸요(함께 웃음). 학교 선생님들이 저의 사정을 감안해 권하셨습니다.

선생님을 잘 만나셨네요. 국세청 공무원으로 오래 계셨어요? 세무사 개업은 언제 하셨구요?

어느 학교로 원서를 넣어야 할지도 모르고 세무대학이 있는지도 모를 때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으니 선생님이 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 주신 셈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선생님입니다. 국세청 근무는 1987년부터 2004년까지니까 약 17년 정도입니다. 공무원 임용 후 7~8개월 정도 근무하다 군 입대를 했습니다. 군대 기간을 뺀 공무원 실근무 경력이 약 15년입니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공부해 2003년 9월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같은 해 11월에 사직하고 2004년부터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월드텍스연구회 학술대회(2019년 6월)
월드텍스연구회 학술대회(2019년 6월)

형제분들은 어떻게 되나요?

형이 저보다 2년 위, 제 3년 밑의 여동생, 6년 밑의 남동생, 18세 차이가 나는 막내 여동생이 있습니다. 5남매입니다. 울 어머니가 막내 여동생을 아주 늦게 낳으셨습니다. 형님은 영주에 사시며 영주우체국에 근무하십니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저와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 남동생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현재 감사원 기획조정실장입니다.

고향에 오면 문단 집에 묵습니다. 5년 전쯤 문단에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곳은 저희 창원 황가 집성촌이기도 합니다. 아버님은 제가 서른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고생만 많이 하셨지요. 어머니는 지금 건강하십니다.

어렸을 때 추억도 많지요? 힘들게 사셨던 것도 포함해서...

이런 질문이 사실 제게 가장 불편합니다. 저와 형은 영주 중앙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제 여동생은 학교는 중앙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은 도촌초등학교에서 했습니다. 당시 도촌초등학교 학생수가 모자란다고 했습니다. 당시 제 여동생처럼 학교는 영주에서 다녔으면서 졸업은 도촌초등학교에서 하는 학생들이 여러 명이었습니다.

영주고 재경동문회장으로 활동하셨지요? 올해 초 영주고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하셨구요.

동창회 모임 중 가장 자주 만난 모임이 영주고 친구와 선후배들과의 모임입니다. 재경 영주고 동문회장은 2012년과 2013년에 했습니다. 그때부터 고향에 자주 내려갔었네요. 행사가 있으면 가고, 체육대회 있으면 가고, 결혼식이 있으면 가고... 영주고 총동창회장을 맡고 나선 일주일에 한 번꼴, 일주일도 두 번도 갔습니다. 행사, 경조사 등등... 영주에 살지 않으면서 총동창회장을 맡았는데 전임 김종은 회장님도 출향인으로 동창회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2004년 세무사 개업을 하셨으니 벌써 20년이겠군요. 안산세무사협의회 임원도 맡고 계시고.

2004년부터이니 만 20년입니다. 세무사 사무실은 안산에 계속 있습니다. 거주는 안양 평촌에 살다 과천으로 이사한 지 6년 정도입니다. 안산세무사협의회 부회장입니다. 차기에 회장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영주고 총동창회장을 하고 있는지라 걱정입니다. 안산세무사협의회 회원 수는 180명 수준의 큰 조직입니다. 간담회엔 100명 이상씩 참여하십니다.

영주고 총동창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계획은?

모교인 영주고가 한국철도고등학교로 바뀝니다. 학교 명칭도 바뀌고.. 농고, 공고, 종고를 거치고 영주 중앙고를 이은 현 영주제일고등학교 등 관련 선례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동창회,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철도고 프로그램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다들 자부심이 있고 외지 연고 학생들도 많더라구요.

영주고의 철도고 전환을 처음엔 동창회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학생 수 감소 등 현실을 생각하면 변화를 할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명문 영주고 출신의 자부심도 있는데 교명이 바뀌니 지금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폐교보다 낫다고 봅니다.

동창회에서 주는 장학금도 있지요? 황 회장님도 계속 장학금을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매년 총동창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재경동문회와 재구동문회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저와 몇몇 동문들은 개인적으로 소정의 장학금을 매년 학교에 지급하고 있습니다. 동문들이 10여 년 전부터 인구감소로 인한 미달 사태를 예견하고 학교발전협의회를 구성해서 1억원 정도의 장학금을 모금해 3~4년 전에 학교에 전달한 적도 있습니다.

안산세무사협의회 라오스 방문(2023년 4월)
안산세무사협의회 라오스 방문(2023년 4월)

앞으로의 삶 계획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50대 말입니다. 예전 세대와 달리 인생 피크 시점이라 봅니다. 30대 40대 50대를 먹고 살기 위해 힘들게 살았다면 봉사활동이나 이런 거는 이제 시작인 거지요. 앞으로 고향에도 자주 가고 현재 하는 일도 열심히 하고... 형편만 되면 이런 저런 좋은 일 많이 해야지요.

어릴 때 부모님의 당부 말씀 중 성장하면서 가장 영향을 미친 말씀은?

먹고 사는 게 힘들어 특별히 강조하셨던 말씀은 없습니다. 공부하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저희는 주말에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사소한 거짓말도 혼내셨습니다. 정리 정돈 잘하시고 맡은 일은 깔끔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친척들과는 서운함이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저희 5남매는 말다툼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향의 후배(청소년, 젊은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제가 아직 청년이나 마찬가지인데 좀 어색합니다(함께 웃음). 공부를 잘했든, 좋은 대학을 나왔든, 영주에 살든, 대도시로 나가든 어떤 일을 해도 계속 공부하고 독서하며 노력하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디 살든 성실하면 행복한 삶이란 확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타지에 나가지 않아도 좋다고 봅니다.

영주의 발전을 위해 영주시민 또는 영주시 당국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지방은 대부분 인구 감소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공공기관·군부대·기업체 유치를 위해 타 지자체보다 더 노력하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영주는 자연 자원과 문화 자원이 비교적 경쟁 우위입니다. 관광객 방문이 많아지도록 홍보와 코스를 잘 개발했으면 합니다. 방문객에는 친절해야 합니다.

봉사, 장학금 조성 등 업무 외의 사회 기여 활동도 하시잖아요. 소개 부탁합니다.

공직 퇴직 후 봉사활동을 더 합니다. 공직 퇴직 후인 2006년-2007년 로타리클럽 총무로, 2010-2011년 시흥지역 로타리클럽 회장으로, 2007년부터 8년 동안 안산의 사회복지법인 평화재단 감사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시흥시 출연 시흥시1%복지재단의 감사로 관련 봉사를 했습니다. 매년 모교인 영주고에 장학금을, 저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님이 이끄는 학술단체 월드텍스연구회를 통해 어려운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귀향하실 의향이 있다면 언제 계획이신지요? 또는 출향인들의 고향 귀향을 촉진하기 위해서 영주 시민 및 영주시 당국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요?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정년이 없는 직업인지라 아직 귀향은...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영주에 가니 거의 영주시민이나 마찬가집니다(함께 웃음). 5년이나 10년 후엔 수도권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출향인들의 귀향, 외지인의 귀농귀촌을 촉진하려면 환영하는 공무원, 깨끗한 환경, 텃세 없고 인심 좋은 시민 등등.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되거나, 하나를 고친다고 되는 게 아니니 매일매일 고치고 또 고치며 해야 하겠지요.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황호식 회장 프로필

- 봉화 문단 출생

- 영주중앙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졸업

- 국립세무대학졸업

- 한양대학교 경영학 석사

- 강남대학교 세무학 박사

- (전) 국세청 근무

- (현) 세무법인가람 안산지점 대표세무사

- (현) 안산세무사회 부회장

- (현) 영주고등학교 총동창회장

- (역임) 시흥선봉 로타리클럽 회장, 사회복지법인 평화재단 감사, 시흥시1%복지재단 감사

- 재경영주고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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